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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침잠mania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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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주 Jul 13. 2022

경쟁에서 존엄으로

테스토크라시(Testocracy)→디그노크라시(Dignocracy)

내게는 실로 새로운 국면이 필요했다. 


본능이 암시한 경종 신호(사이렌)를 민감하게 인지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다음 단계를 모색했다. 그동안 매년 아이들과 가까이에서 만나왔다. 그러나 1년에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친구는 기껏해야 학급 내 30명 정도였다. 욕심이 났다. 기존의 교육체제를 개선한다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까지 생각이 도달했다. 


나는 교육전문직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수채화 화실에서 수년간 함께 그림을 그리며 나를 예뻐하신 이웃 학교 교장 선생님의 소개로 나는 대단한 멘토를 만나게 되었다. 장학관 출신 퇴임 교장이신 멘토님 덕분에 초중고를 아우르는 훌륭한 부장님들과 학습팀을 꾸렸다. 







학습 팀원들은 다들 내로라하는 교육경력을 지닌 분들이었다. 현직에서 오랫동안 교무, 연구, 인권 등 핵심 부장으로 일한 경력은 기본이고, 수년간 정책을 공부해서 내공이 깊은 프로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win-win 해야 하는 운명공동체였기에,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나는 팀의 막내였지만, 공동체에 절대 폐가 되기 싫었다.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고, 팀 과제를 완벽하게 완수했다. 내가 공들여 만든 페이퍼를 팀원에게 공유하고, 핵심 내용을 발제했다. 매일매일을 시험 전날처럼 살았고, 학교 근무가 끝나고 퇴근 시각 이후부터가 진짜 살벌한 시간이었다. 


퇴근 후 나는 공부전쟁터인 집으로 다시 출근하였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또 줄이고, 학습 시량을 늘이고 또 늘이면서, 몸은 마르고 또 말라 갔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망각한 채, 미친 듯이 나를 공부로 채우고 또 채웠다.     







코로나가 세상을 엄습한 이후로는 온라인에서 팀 학습을 지속했다. 학습공간인 ‘공부방’을 만들고 토요방, 일요방, 화요방, 수요방, 목요방 등 거의 매일 만났다. 학습한 내용을 나누고, 테스트와 피드백을 반복했다. 팀 러닝도 매우 자주 했지만, 그보다 열 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혼자서 공부했다. 내가 많이 알아야 팀원들에게 기여할 수 있고, 또한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드디어 시험일에 임박했다. 


멘토님께서는 내가 실력, 내공, 명석함 등 모든 면에서 에이스라서 반드시 수석 할 거라고 누누이 호언장담하셨다. 많은 이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시험장에 앉아 문제지를 받아 들었다. 처음 도전한 전문직 시험지 앞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문제가 기대 이하로 너무 평이하고 쉬웠다. 


시험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교육 관련 모든 것을 대비하고 공부했던 터였다. 심지어 해외 교육 논문 및 포럼 원고까지도 섭렵해서 어려운 문제에 대비했던 나였다. 허망한 마음으로 14장의 시험지를 가득 채웠고, 찜찜한 마음으로 고사실을 나왔다. 1차 시험 발표일, 나는 너무나 담담했다. 당연히 합격했을 것이고, 그 뻔한 사실 앞에서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오후 3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광속으로 접속했다. 


그런데 심장이 쿵. 


1차 합격자 명단에, 당연히 있어야 할 내 수험 번호가 보이지를 않았다. 진심으로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해서 명단을 봤다. 또 보고 또 봐도 내 번호는 없었다. 내 눈앞의 온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느낀 충격 못지않게 가족과 지인들의 당혹감도 컸다. 그러나 타인들의 반응은 내 안중에 없었다. 나는 절체절명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혼미할 따름이었다. 밤이 되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내 의식 속 시각은 여전히 오후 3시였다. 새벽 내내 인정할 수 없는 결과를 부인하며 몸서리쳤다. 


날이 밝았지만, 내 눈은 여전히 칠흑보다 캄캄한 어둠을 보았다. 



출근하는 버스를 탔다. 온 우주가 박살이 나버렸는데, 세상의 아침은 너무나 멀쩡했다.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은 다들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내 모든 것이 파괴되고 바스러졌는데, 나를 뺀 세상은 놀랍도록 멀쩡했다. 


이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서러웠고,
또다시 극도로 분노했다. 


아무리 분개하고 부인해도, 내가 떨어졌다는 현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눈을 창밖으로 향했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눈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은 콧물과 함께 온 얼굴을 덮었다. 마스크 안으로 눈물 범벅된 얼굴이 들킬까 봐 소리를 꾹 참으며 계속 울었다. 


마스크 덕분에 나의 오열을 버스 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숨어서 목놓아 우는 나 자신이 너무나 참담했다. 눈물을 가려준 마스크가 고마웠다. 마스크가 필수인 코로나라서 다행이라 여기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도록 불쌍했다.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한 냉혹한 참담함은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출근길을 가득 채울 만큼 눈부신 5월의 햇살은,
나를 찬란한 슬픔의 봄으로 추락시켰다. 
 

  



시간은 흘렀고, 죽고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분노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로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고, 살아갈 명분을 찾아야 했다. 


감히 날 떨어뜨린 이 시험을 버려버릴까도 수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기엔, 죽을 만큼 노력했던 나의 귀한 청춘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긴긴 세월을 고스란히 교직에 바쳤고, 뼈가 부서져라 일하면서 현장에 기여했다. 실전 경험을 기반으로 모든 교육정책을 완벽하게 해석하고 통달하였다. 시험 응시자들 중에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부장 경력 및 표창과 업적 면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월등했던 나였다. 상반기 모범공무원 표창을 위해 작성한 공적조서가 총 41쪽에 달할 정도로 필드에서 탁월했던 나였다. 여기서 그만두는 건 그동안 몸 바쳐 희생한 내 인생에 대한 반역이었다.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내 모든 것을 걸어 보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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