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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an 11. 2024

베풀면 반드시 돌려받는다

삶에도 적용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이 영화는 본 글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활을 쏘는 궁사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화살이 부러졌을 때 남을 탓하지 않는 것.


첫 번째 이유로는 그 화살이 어떻게 부러졌는지 경위를 파악할 수가 없다. 내 화살에 이미 금이 가 있었는데 발사되면서 혹은 과녁이나 땅에 맞으면서 생긴 충격으로 인해 부러진 건지, 다른 이가 쏜 화살에 맞았기 때문인지 망원경보다 좋은 시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내 화살이 부러진 자리에 타인의 화살이 겹쳐져 있어 있다고 해도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첫째로 한 화살이 다른 화살을 관통한 모습이 연출되지 않았다면 관통된 사이에 화살이 놓여 있다고 해도 그게 원인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 관통이 되어있다고 해도 그가 의도적으로 했을 리 만무하다. 의도성이 다분하다고 해도 145미터 거리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화살을 맞힐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1명도 없을 것이다. 그가 정말 일부러 맞힌 것이라면 화살값 물어내라고 할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최고의 명사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어서 나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로는, 나 또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의 화살의 파손 사건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살을 주우러 갔더니 누가 자신의 화살이 부러진 것을 보고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있는데 그 옆에 하필이면 자신의 화살이 있어서 참 난감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활터에 그러한 불문율이 없다면 궁사들 간에 괜히 얼굴 붉힐 일이 생길 수 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 이 얼마나 군자다운 면모인가. 자신의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는다고 외부를 탓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구저기의 자세처럼. 내 화살이 입은 피해 또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멋진 자세.


위 불문율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처음 활을 배우는 기초교육 과정 중에 당시 사범님이 해주셨던 말씀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정신자세가 너무나 내가 지향하고 싶은 바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말 그런 일을 실제로 겪기도 했기 때문에 저 말을 더 가슴 깊이 실감하기도 했다.




때는 아마 내가 활을 쏘기 시작한 지 6개월쯤 되었을 시기였을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을 쏘고 화살을 수거하러 다 같이 이동을 했다. 하나, 둘, 셋... 내 화살을 찾아가며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림처럼 열심히 화살을 줍고 있는데 한 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맞으라는 과녁은 안 맞고 다른 분의 화살의 정중앙을 시원하게도 꿰뚫어버린 것이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젠장.


교육 때 들었던 '불문율'의 내용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살이 부러진 것을 본 당사자의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결코 아닐 것이다. 한 발에 무려 11,000원이나 한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 죽시였다면 3~4만 원은 하니 절대 싼 가격도 아니다. 나는 현장을 훼손(?) 하지 않고 참회의 마음과 표정으로 화살 주인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화살의 주인은 나의 아버지뻘 되시는 60대 남성분이셨다. 처음에 자신의 화살이 장렬히 전사한 것을 보고 당황한 표정이셨지만, (누구라도 그러셨을 것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난색을 표하고 있는 아들뻘의 젊은 궁사의 비굴함을 보시곤 호쾌하게 웃으셨다. "우리 송 접장*이 명사수네 명사수야." 축 늘어진 내 어깨를 툭툭 쳐주시며 괜찮다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접장: 본 뜻은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작은 규모의 리더라는 뜻이나, 활터에서 서로를 높여 부르는 말로 쓰는 일반적인 호칭이다. 활터에서는 화살을 한 번 쏠 때 들고 가는 5발을 한 번에 모두 맞히는 '몰기'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접장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불문율이 면죄부는 아니다. 남의 화살을 마음껏 부러뜨려도 부러뜨린 입장에서 선처를 당연하게 기대하라는 뜻이 아니다. 화살이 부러지고도 웃어넘길 수 있는 대인배가 될 수 있도록 상대방을 높여주는 것이 그러한 불문율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때 느낀 감사함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보고 배운다. 훗날 자기 자신도 대인배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는 것이다.



받았으면 베풀 줄 아는 것이 응당 사람의 도리이리라. 그리고 베푼 만큼 다시 돌려받는 것도 세상이 이치다. 위 사건이 있고부터 시간이 꽤 흐르고 난 뒤에 이번엔 내 화살이 부러진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다른 누군가가 그때의 나처럼 참회하길 바라지 않았다. 당황하거나 난색을 표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부러진 화살을 챙겨서 내 부러진 화살 가운데로 놓여 있던 화살의 주인이 알아채지 못하게 그 현장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두 동강이 난 화살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면서.



내 화살이 처음 부러졌을 때. 가슴이 아팠다.


자기 화살이 부러지는 건 경위를 막론하고서 절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의 고귀함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러한 군자의 덕이 묻어 나오는 활터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듯 활터라는 공간과 활이라는 수단 자체가 그 사람의 그릇을 키워주기도 하는 것 같다.


위에서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내가 너무 미안해하지 않도록 격려해 주시던 접장님은 정말 대인배이신 게, 그 일이 있고부터 또 한참 지나서 나에게 한 번 더 같은 일을 겪게 된다. 아, 이 무슨 인연의 지독한 장난질인지. 같은 사람의 화살을 두 번씩이나 부러뜨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벌써 두 번째 이러니 정말 면목이 없다는 나의 말에 "그럴 확률이 정말 낮은데 오늘 우리 둘 다 로또를 삽시다." 라며 센스 있게 받아쳐주셨다. 로또 되면 활과 화살을 풀세트로 사드리겠노라고 하며 그날 정말 로또도 샀다. 물론 당첨이 되지는 않았다.


그때 접장님도 로또를 사셨을까, 차마 여쭤보진 못했다.


그 후 그분의 활 커리어(?)는 향상일로를 걸었다. 승단 대회, 전국 대회 등에서 수상도 하시고 시 대표 선수에도 선발이 되시는 등 지금도 우리 활터 내에서 인망이 높으시다. 착하고 어진 사람이 어딜 가서든 잘 되길 바란다. 그분에겐 단지 2만 원 정도밖에 안 하는 화살 두 발이지만 나에겐 큰 따뜻함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감사와 사랑은 돌고 돈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게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돌아온다. 결국 내가 다 가져갈 것이라면, 무엇을 파종하며 살아야 할지는 너무나도 극명하지 않은가.


최근에 새로 산 화살이 부러졌다. 내가 받은 가르침과 감사한 경험들이 없었다면 난 매우 속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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