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매일 정성을 들여도 4년 동안 3cm 남짓만 자라는 대나무가 있다.
중국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인 모소 대나무의 얘기다. 보통의 대나무들은 하루 만에 1m까지 자라기도 한다는데, 대체 넌 뭐가 문제니. 보통의 대나무인 줄 알고 데려왔다면 기르는 사람 입장에선 답답할만하다.
그런데 이 느림도 대나무는 5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성장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하루에 30cm씩도 자라기도 하면서 6주 만에 15m 이상 자라면서 금세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
자라는 것인지 잠자는 것인지 모를 지난 4년간 이 친구가 이룬 것은 3cm 남짓의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이 아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모소 대나무는 보이지 않는 땅 속에 깊고도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그 탄탄한 기반을 이루고 난 뒤에야 그는 흔들림 없고도 저돌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활을 쏘는 접장들이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한 번 쏠 때 들고 가는 5발의 화살(=한 순巡)을 모두 명중시키는 것이다. 이를 '몰기'라고 한다. 잘하시는 분들은 몰기를 밥 먹듯이 한다. 웬만한 접장님들도 대개 못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몰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여태 딱 2번 해봤다. 활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째 되던 날 한 번, 그리고 2년째 되던 날 한 번. 2년 동안 딱 2번의 몰기를 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나는 활을 무식하게 쏜다.
심지어 과녁을 조준하지도 않고 쏜다. 그저 매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할 따름이다.
안 맞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몰기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남들에 비해 빈도가 현저히 낮을 뿐.
남들이 보면 아둔한 방식일지 모르나, 나는 내 활쏘기가 모소대나무를 닮았다 믿는다.
내 활쏘기에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기왕 전통 활쏘기를 할 것이라면 쏘는 모양새도 전통의 방식대로 하고 싶고,
과녁을 얼마나 맞혔느냐에만 집중하는 활쏘기가 아니라,
정신 수양의 방편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쏘는 활쏘기를 하고 싶고,
나 자신의 심신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활을 내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긍정적이고 맑은 기운을 전파하는 활쏘기를 하고 싶다.
무엇을 하든 철학이 밑받침이 된다면 그것은 언젠가 커다란 한 획을 긋기 마련이다.
지금은 별 것도 아니고 사소해 보이는 차이일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탄탄한 내공이 기반이 된다면
나름의 실체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LA에서 출발하여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3.5도 정도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뉴욕이 아니라 워싱턴 D.C에 도착한다고 한다. 운전할 때 유턴하는 것보다도 방향을 살짝 튼 것일 텐데도 그 차이가 누적되면 어마어마한 간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활을 쏠 때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것은 고스란히 결과로 드러난다.
온 마음을 다 해 쏜 화살과 대충 쏜 화살은 다르다.
처음 날아갈 땐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145m라는 거리를 날아가는 동안에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진다.
그 차이가 과녁에 맞고 안 맞고를 결정짓고 거센 바람에도 밀리지 않고 뚫고 나갈 기세를 만든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실감하며 온몸으로 꾸준히 정진하면 남이 보기엔 허구한 날 삽질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느 순간 달라진다. 아니 달라질 것이다. 모소 대나무처럼.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어도 결코 똑같지 않다. 우아하고 평온해 보이는 백조도 수면 아래에선 부단히 갈퀴가 달린 두 발을 퍼덕거리고 있을 테다. 당신은 점차 나아지고 있고 그 결실은 언제가 될진 몰라도 반드시 드러난다. 당신이 포기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나도 포기하지 않을 테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믿자.
+추신: 이 글을 쓰고 얼마되지 않아 2024년 첫 몰기이자 활 인생 세 번째 몰기를 했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