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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08. 2024

백발백중의 비밀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만든다

ⓒ영화 <최종병기 활> 중
숲 속을 탐험하고 있는 한 사냥꾼이 여러 나무에 걸려있는 몇 개의 표적지를 발견했다. 사냥꾼은 모든 표적지의 한가운데 화살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과연 이렇게 완벽한 궁술을 지닌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그 화살을 쏜 주인공을 찾아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궁수를 발견한 사냥꾼은 그에게 물었다.

"그리도 정확하게 겨냥할 수 있는 비결이 뭐죠?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화살을 잘 쏠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해요."

궁수는 이어 말했다.
"저는 먼저 화살을 쏘고, 그다음에 표적지를 그리지요."


최근에 읽은 옛 유대인의 문제해결에 관한 지혜를 담은 <이디시 콥>이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다.

화살을 쏘고 그 화살이 박힌 곳에다가 과녁을 그리면 백발백중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유머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함의하는 바가 남다르다.


저 일화가 함의하는 바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세계가 '논리'와 '이성'만으로 모든 것을 분석하고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숨겨진 영역'에서는 정답을 찾으려는 경직되고 고정된 태도가 아니라 끝없이 사유하고 질문하는 유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분석학의 자유연상법과도 관련이 있다. 자유연상법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의식적인 검열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심리요법으로 프로이트가 신뢰했던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이것은 내가 아침마다 작성 중인 '모닝 페이지'와도 닮아있다. 모닝페이지는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이 창안한 기법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아 생각나는 것을 자유롭게 노트 위에 적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내면에서 들리는 진짜 자신의 목소리에 보다 더 잘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게 아니라, 화살을 쏘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저절로 자신의 화살에 맞는 과녁이 생겨난다. 화살이 과녁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과녁이 화살을 향해 자석처럼 따라붙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살이 향하는 그곳이 곧 과녁이 되는 것이다.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만든다.


ⓒ 국궁신문


정답에 천착하지 않고 질문을 하며 유동의 바다 위에서 앞으로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것. 이것은 결국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향하는 길을 묘사한 내비게이션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이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정답이 중요하지만,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답은 모두 주어져 있다. 우리는 그 답에 걸맞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에 하나의 맥락(Context)을 제공하고 그 맥락 하에서 이미 존재하는 답들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논리와 이성, 지식과 정보만이 이 세계를 헤쳐나가는 유일한 열쇠가 아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질문하며 이동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지식은 고정된 세계다. 반면 질문은 계속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해답의 바다' 위에서 물고기를 낚을 수 있게 하는 낚싯대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면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도 해답이 아니라 질문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많고, 세상은 넓고 무한하다.'


과녁이 아니라 활을 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과녁을 찾아나가는 것을 통해 겸허함과 지혜가 동시에 깃들어 있는 저 문장의 진가를 음미해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화살이라면 / 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일찍이 시위를 떠났지만

전율의 순간이 오기 직전

과녁의 키는 더 높이 자라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팽팽한 허공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금빛 별을 품은 화살촉을 달고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고독의 혈관으로

불꽃을 뚫는 장미이기를

숨 쉬는 한 떨기 육신이기를

길을 알고 가는 이 아무도 없는 길

길을 잃은 자만이 찾을 수 있는

그 길을 지금 날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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