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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01. 2024

같은 과녁, 다른 마음

그 모든 것이 다 활쏘기


당신의 가슴엔 어떤 과녁을 품었나요?



사람들이 활과 화살을 들고 순서대로 사대에 오른다.

자세와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차분한 상태로 자신 앞에 놓인 과녁을 바라본다.


'활 배웁니다.'

'많이 맞히세요.'


어김없이 오고 가는 겸양의 선창과 행운을 빌어주는 후창.

한 달 남짓된 초보 궁사든, 10년 가까이 활을 쏜 사람이든 예외 없이 활을 내기에 앞서 과녁에 인사를 올린다.

마음만 먹으면 배울 점은 언제, 어디서나 있다.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든 관계없이 말이다.


모두가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과녁을 바라보며 똑같이 시위에 화살을 걸어 과녁을 향해 날려 보내지만,

진짜 과녁은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 상이한 얼굴을 하고서 존재한다.


누군가는 어제의 자신과의 경쟁을,

누군가는 옆에 선 사람들 과의 경쟁을,

누군가는 전국에서 내로라한다는 사람들이 세웠던 기록과의 경쟁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한 발 한 발이 맞느냐 안 맞느냐의 현재의 순간에만 주목한다.

지난 과거에 맞히지 못했던 화살은 지나갔고, 남은 화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지금 날려 보내는 그 화살의 비행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또 다른 사람은 똑같이 현재에 머물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활도 화살도 아닌 자신의 몸이다.

발끝에서부터 시작하는 지기(地氣)가, 머리끝에서는 천기(天氣)가 전신의 경락을 타고 흘러

불거름(단전)에 모여 맺히는 것을 충만히 느낀다. 


이윽고 그것이 온몸으로 퍼지며 양 손끝으로 터져 나가는 순간 비로소 눈을 뜨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본다. 마치 화살이 내 안의 기운이 형상을 갖추고 드러난 것이라도 된다는 듯.

 

소풍 나오듯 옆사람과 즐겁게 이런저런 짧은 담소를 나누며 활을 쏘는 사람,

조용히 자신의 활쏘기에만 차분하게 집중하는 사람,

자신의 화살이 어디로 갔는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사람,

화살이 과녁에 안 맞으면 '에이~'하는 푸념의 한숨을 내뱉다가도 다음 화살이 맞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장비로, 각자의 자세로,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자신만의 과녁을 향해 자신을 날려 보낸다.

각자의 활쏘기지만 결국 그것이 활쏘기의 모든 것이다.


활은 맞히는 것이 아니라 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본질에서 드러나는 결과일 뿐 그 자체로 본질은 아니다. 쏘는 족족 다 맞는다면 어떨까? 100발을 쏘든 1,000발, 아니 1만 발을 쏴도 하나도 빗겨나가는 것이 없이 다 맞는다면? 눈을 감고 쏘든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쏴도 맞는다면?


결국 활을 쏘는 행위 자체에는 과녁을 향해 풍운의 꿈을 화살에 실어 날려 보내는 그 모든 순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잘 맞지 않는 과녁이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활을 쏜다. 그것은 꼭 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개별적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다.


인생에 단 하나의 목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각자의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게 크든 작든, 힘든 것이든 재밌는 것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모든 인생이고, 모두가 값어치를 매길 없을 만큼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바라는 족족 이뤄지기만 하고, 그 어떤 시행착오도 없다면, 불안과 우울이 없다면? 그것은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쾌락과 행복은 오직 불안과 우울이 존재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과녁을 각자가 가슴에 품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활쏘기이듯

저마다 다른 이상을 품고 사는듯 보여고 그 모든 게 결국 다 인생이다.


과녁에 나의 의지가 가닿길 바라며 매번 활을 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지가 있는 인간은 어디로든 과녁에 가까운 그곳으로 가닿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그리고 함께 화살을 날려 보내는 그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각자의 과녁을 똑바로 보고 선 채로 활시위를 있는 힘껏 당긴다. 그 의지가 온몸을 휘감아 절로 힘껏 깍지손이 뒤로 터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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