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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an 25. 2024

남들은 한 달에 한 번, 나는 1년에 한 번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매일 정성을 들여도 4년 동안 3cm 남짓만 자라는 대나무가 있다.

중국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인 모소 대나무의 얘기다. 보통의 대나무들은 하루 만에 1m까지 자라기도 한다는데, 대체 넌 뭐가 문제니. 보통의 대나무인 줄 알고 데려왔다면 기르는 사람 입장에선 답답할만하다.


모소대나무의 모습이라는데 참 귀엽게도 생겼다.  ⓒbnrmagazine.com


그런데 이 느림도 대나무는 5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성장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하루에 30cm씩도 자라기도 하면서 6주 만에 15m 이상 자라면서 금세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

자라는 것인지 잠자는 것인지 모를 지난 4년간 이 친구가 이룬 것은 3cm 남짓의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이 아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모소 대나무는 보이지 않는 땅 속에 깊고도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그 탄탄한 기반을 이루고 난 뒤에야 그는 흔들림 없고도 저돌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활을 쏘는 접장들이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한 번 쏠 때 들고 가는 5발의 화살(=한 순巡)을 모두 명중시키는 것이다. 이를 '몰기'라고 한다. 잘하시는 분들은 몰기를 밥 먹듯이 한다. 웬만한 접장님들도 대개 못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몰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여태 딱 2번 해봤다. 활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째 되던 날 한 번, 그리고 2년째 되던 날 한 번. 2년 동안 딱 2번의 몰기를 했다.


눈 감고 쏘는 게 더 나을지도 (ⓒ: Everyday Oracle)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나는 활을 무식하게 쏜다.

심지어 과녁을 조준하지도 않고 쏜다. 그저 매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할 따름이다.

안 맞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몰기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남들에 비해 빈도가 현저히 낮을 뿐.


남들이 보면 아둔한 방식일지 모르나, 나는 내 활쏘기가 모소대나무를 닮았다 믿는다.

내 활쏘기에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기왕 전통 활쏘기를 할 것이라면 쏘는 모양새도 전통의 방식대로 하고 싶고,

과녁을 얼마나 맞혔느냐에만 집중하는 활쏘기가 아니라,

정신 수양의 방편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쏘는 활쏘기를 하고 싶고,

나 자신의 심신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활을 내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긍정적이고 맑은 기운을 전파하는 활쏘기를 하고 싶다.


무엇을 하든 철학이 밑받침이 된다면 그것은 언젠가 커다란 한 획을 긋기 마련이다.

지금은 별 것도 아니고 사소해 보이는 차이일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탄탄한 내공이 기반이 된다면

나름의 실체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LA에서 출발하여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3.5도 정도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뉴욕이 아니라 워싱턴 D.C에 도착한다고 한다. 운전할 때 유턴하는 것보다도 방향을 살짝 튼 것일 텐데도 그 차이가 누적되면 어마어마한 간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저기에 한반도를 갖다 대야 차이가 더 실감이 날 것이다 (ⓒ여행작가제이민 님의 네이버블로그)



활을 쏠 때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것은 고스란히 결과로 드러난다.

온 마음을 다 해 쏜 화살과 대충 쏜 화살은 다르다.

처음 날아갈 땐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145m라는 거리를 날아가는 동안에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진다.

그 차이가 과녁에 맞고 안 맞고를 결정짓고 거센 바람에도 밀리지 않고 뚫고 나갈 기세를 만든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실감하며 온몸으로 꾸준히 정진하면 남이 보기엔 허구한 날 삽질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느 순간 달라진다. 아니 달라질 것이다. 모소 대나무처럼.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어도 결코 똑같지 않다. 우아하고 평온해 보이는 백조도 수면 아래에선 부단히 갈퀴가 달린 두 발을 퍼덕거리고 있을 테다. 당신은 점차 나아지고 있고 그 결실은 언제가 될진 몰라도 반드시 드러난다. 당신이 포기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나도 포기하지 않을 테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믿자.


+추신: 이 글을 쓰고 얼마되지 않아 2024년 첫 몰기이자 활 인생 세 번째 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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