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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an 18. 2024

활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활터의 필부필부

국궁 인구가 약 3만 명이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적은 수냐면 국내 비건 인구수가 약 250만 명이라고 하는데 내가 2019년부터 벌써 6년째 채식을 이어가고 있는데 온라인상에서는 뭔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느껴지지만 정작 내 주변에 채식하는 사람은 6년 동안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을 정도다. 

**국궁 인구수 및 비건 인구수는 Chat-GPT4에게 물어봤다.


이토록 '소수 정예'만 모여서 활동하는 분야가 국궁이다. 일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확률적으로 남들이 잘하지 않는 독특한 것을 '굳이' 선택하는 사람은 그만한 기질적 특징을 지닌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특징까지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겠지만 말이다.


어느덧 2년 넘게 활터에 나가면서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또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들을 공유해 본다.






어디까지가 언니이고 누님이고, 형이고 형님인가    


활터에서는 보통 '접장님'이라는 칭호를 붙여 서로를 부른다. (여성 궁사에겐 '여무사'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말도 있지만 거기에 담긴 의의와 별개로 젠더 평등의 시대에 굳이 칭호를 구분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다) 내가 다니는 활터 같은 경우는 접장이라는 칭호를 '한 순(5발)을 모두 맞히는 몰기를 한 사람'이라는 협의에 국한시키기 때문에 아직 몰기를 하지 못한 분껜 '사우 님' 혹은 '회원님'이라고 부르자는 것이 공식적 규칙이다. 



그러나 사우 님은 너무 일상생활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표현이고, 회원님은 어디 헬스클럽 트레이너가 된 기분이다. 지금은 그냥 남녀노소 활터에서 만나면 나는 접장님이라고 불러드리지만, 이 칭호에 적응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접장님이라고 하기 전엔 만나는 분들께 'OO님'이라고 불렀는데 이것도 스타트업이나 IT기업들에서 이름이나 닉네임에 '님' 자를 붙여서 쓰기 시작한 것이 조금씩 일반 사람들에게서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 원래 '님' 자는 직책에나 붙이는 거란다.


막내가 형님들(?) 사이에 끼어들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꽤 생기고 나면 직책 같은 것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보다 형님동생, 누님동생 하는 막역한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다. 문제는 만나는 대부분이 부모님 뻘, 삼촌이모뻘 되다 보니 호칭이 참 거시기하다는 것이다. 일단 아무리 뒤에 '님' 자를 붙인다고 해도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 분의 존함을 떡하니 입에 담는 것이 뭔가 결례를 범하는 기분이랄까. 내 앞에 YSL 대통령이 있다고 하면 대통령님, 각하, 등은 뭐 거부감이 들지 않지만 석렬님(?)은.... 으으... 왜 이렇게 낯설고 내가 다 불편한가!



나도 형님이라고, 누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러기엔 너무 또 내가 너무 건방져 보이나 싶기도 하고, 아버지뻘 삼촌, 이모, 고모 뻘에게 형님 누님이라고 하는 게... 정녕 맞나....?  그렇다고 친분이 어느 정도 생겼는데도 나보다 나이 많으신 접장님들께 '말씀 편하게 하세요.'라고 먼저 선뜻하지도 않는 성격이다 보니 '저놈 저거 존댓말 듣고 싶어서 저런다'는 오해를 사기도 십상이다.



아... 친분과 예의 두 마리 토끼를 한방에 잡을 수 있는 표현 어디 없나?




전통과 진보의 대립


오랜 전통이 있는 스포츠다 보니 전통에 대한 이슈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활터 내에서도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과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으로 사람들이 크게 갈리기 마련이다. 



궁도 9계훈

일례로, 활터에는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는 규칙이 있다. 사대에 서서 활을 쏠 땐 일절 말을 삼가는 것이다. 자신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만 신경을 쓰라는 뜻일 게다. 활을 정신수양의 도구로 보는 나는 습사무언에 매우 찬성하는 주의다. 하지만 실제 활을 쏴보면 습사무언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활을 스포츠, 놀이의 개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습사무언의 규칙은 재밌는 놀이의 공간을 독서실이나 사찰처럼 공기가 무겁고 숨 막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고루한 인습이다. 그들은 화살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서로 봐주고, 아깝다며 격려해 주고, 맞았다고 칭찬해 주며, 서로 웃고 떠드는 활터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딱 예외적으로 습사무언에 찬성할 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대회 때다. 이때는 평소에 안 그러던 사람도 예민해지기 쉽다. 자신이 과녁을 겨냥할 때 옆 사람의 작은 행동 하나도 거슬리기 쉽다. 남들과 즐기는 것보다 내가 잘 맞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스운 건 과거 조상들의 전통 편사(便射;편을 나누어 활쏘기를 겨룸)를 보면 오히려 반대였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습사무언으로 조용한 활쏘기를, 편을 나누어 경기를 할 때는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판을 제대로 벌였다는 것이다. 승부는 스스로와의 내면과 하는 것이고, 타인들과는 더불어 즐길 줄 아는 면모, 이것이야 말로 풍류가 아니겠는가. 


1901년 촬영된 활쏘기 영상. 장소는 이전 되기 전 황학정으로 추정.


이렇듯 활터에는 옛 가치와 현대의 가치가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 조화롭게 뒤섞이기도 하며 오늘날만의 문화를 자아내고 있다.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ㅃ, 아니 인사를


바야흐로 초개인주의 사회다. 이웃집에 수저가 몇 개 인지도 다 알던 사생활이라곤 없던 낭만(?)이 있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알아도 '그게 뭐 어쨌다고?'의 시대다. 옆집에서 누가 고독사로 죽어도 냄새가 나기 전까진 아마 모를 것이다. 요즘 세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은 유채색이 아니라 무채색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고 다니는 색이기도 하다. 겨울만 되면 모두가 검정 롱패딩을 입으니 매일이 장례식이 따로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해졌고 오히려 요즘 포*스미디어 같은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대화하지 않는 것이 예절이란다. 언제부터? 그리고 그들이 무슨 권리로 예절을 논한단 말인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활터에는 인사의 풍습이 살아있다. 등정(활터에 입장하는 걸 나타내는 표현)하면 먼저  와 계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게 '등정례'라는 당연한 예절이다. 평소에 알던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일단 인사를 한다. 활을 쏘고 계시는 중이라면 방해되지 않게 차례가 다 끝나고 나면 인사를 드린다. 심지어 활을 쏠 땐 그날 발사하는 첫 화살을 쏘기 전에 과녁에 대고 인사를 한다. 이것이 초시례다. 함께 쏘는 궁사분들에게 한수 알려달라는 뜻이기도 하고, 오늘 하루 더 나은 궁사로 한걸음 더 성장하게 해 주십사 과녁에 대고 기원하는 겸양의 표현인 것이다. 활쏘기를 마치고 퇴정 할 때에도 남아계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다.



현대에 남은 인사라고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나, 계약에 기반한 갑을 관계, 친분이 있는 관계 등과 관련된 인사밖에 없다. 이런 문화가 남아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치 활터가 동방예의지국의 최후의 보루가 된 듯하다. 그렇다고 활터에서 다른 접장님 집에 수저 개수까지 아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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