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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22. 2024

활 쏘다가도 다칩니다

부상이나 통증이 알려주는 것

요즘 오른 어깨가 아프다. 심한 통증은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낫겠지 싶었는데 2월 초에 처음 느낀 것이 아직도 악화되지도, 그렇다고 나아지지도 않고 만성화가 아닌가 싶다.  2월 달은 일정이 바빠서 활터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때문은 아닌 같다. 지금 추측하기로는 틈틈이 하고 있는 맨몸 운동 루틴 딥스를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자세가 무너진 운동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국궁에도 부상이 있다. 가만히 서서 활시위만 당겼다가 놓는 정적인 스포츠에 무슨 부상이냐 싶겠지만. 그것이 정적이든 동적이든 인간이 몸을 써서 하는 모든 행위에는 부상이 있기 마련이다. 부상을 일으키는 요인에는 내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력이나 준비의 부족, 두 번째는 과욕이다.


스포츠라고 해서 위협적이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활과 화살의 본질은 엄연히 살상이 가능한 무기다. 그것을 현대에는 스포츠의 도구로 쓰고 있을 뿐. 그렇기에 기초 교육 때 대부분의 활터에서 안전 교육을 실시한다. 안전과 관련해서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화살 검사의 중요성이다. 화살을 쏘기 전에 반드시 겉면을 쓰다듬거나 구부려서(밴딩 테스트; bending test) 크랙(crack) 등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그마한 크랙에 활시위의 강력한 탄성이 가해지면 화살이 나가면서 부러져서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 교육을 받을 당시 이와 관련된 자료 사진에는 활을 쥔 손에 부러진 화살 파편이 단단히 박힌 모습이 있었다. 얼마나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던지. 그분의 레퍼런스 덕분에(?) 그 이후로 화살 검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어디 교과서에 실린 사진이 아니라 나보다 먼저 교육을 수료했던 선배 궁사의 실제 경험을 당시 사범님이 촬영해 둔 것이라던데. 교육에 대한 사범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당시 다치신 분이 안녕히 잘 회복하셨기를 잠시 빌어본다.


또 하나의 위험 요인은 낙전과 몰촉이다. 낙전은 화살을 활에 걸어 당기는 도중에, 혹은 완전히 당긴 뒤에 과녁을 조준하며 멈춰있는 정중동의 순간에 모종의 이유로 화살이 활에서 톡 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올바른 자세와 순서를 거쳐서 화살을 당겼다면 낙전 될 일은 없지만, 어딘가 놓치거나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지점이 생기면 낙전이 생기기도 한다.


 그냥 화살이 떨어지는 것이야 다시 걸어서 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발시 직전에 낙전이 일어나는 경우다. 특히 내 경우는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낙전이 이따금씩 나타난다. 그것도 꼭 발시 직전에 말이다. 국궁은 양궁과 달리 활에 화살을 걸치거나 고정시키는 곳이 없다. 활을 쥐는 손의 엄지 손가락 위에 걸칠 뿐이다. 그렇기에 화살이 톡 하고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때 활시위를 놓아버리면 화살촉이 손을 스치고 갈 위험이 있다. 이론이 아니라 애석하게도 내가 그 경험자다.

발시 중 낙전의 흔적. 엄지 손가락은 깃이 스치고 지나갔고, 엄지 뿌리 쪽은 화살촉이 치고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멍도 올라왔었다. (22년 3월)


몰촉은 화살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당긴 것이다. 이 역시 몰촉이 되면 그냥 좀 힘을 빼서 당기는 정도를 줄이면 되는 간단한 것으로 낙전처럼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몰촉이 된 상태에서 발시가 이루어질 때다. 활의 몸채 바깥에 놓인 채 나가야 할 화살이 활의 몸뚱이에 부딪힌다거나 자칫 잘못하면 활이 아니라 활을 쥔 손에 직격으로 부상을 입히게 된다. 몰촉의 원인은 본인의 몸에 맞지 않는 화살 길이를 택해서 화살이 짧은 경우, 혹은 딱 맞은 길이로 했더라도 과녁 맞히기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다 보니 자세가 점검 어그러져서 더 많이 당기게 되는 자세로 바뀌는 경우 등등 다양하다.



기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부상을 낳기도 한다. 의욕이 지나쳐서 자기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몸에 부담을 준 탓이다. 가장 흔한 것이 자기 몸에 맞지 않은 강한 활을 쓰는 경우다. 활을 쏘던 옛사람들은 '연궁중시'를 강조했다. 활은 가볍고 부드러워 자신이 충분히 이길 수 있어야 하며, 화살은 가볍지 않은 것으로 쏴야 활의 탄력을 충분히 흡수하여 멀리 날아갈 뿐 아니라 몸에 오는 충격 또한 흡수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활터에는 반대로 강궁연시가 유행이다. 활을 최대한 무겁고 강력하게, 화살은 가볍게 한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과녁을 조준하는 법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 어떤 분은 이렇게 해야 안정적이고 잘 맞는다고 하면서 양궁식 자세로 쏘기도 한다. 다른 영역의 지식을 과감하게 차용해 보는 실험적인 태도는 높이 살만 하나, 그러면 국궁과 양궁을 나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국궁만의 쏘임새가 굳혀진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양궁이 그 나름대로 최적의 자세를 과학적인 연구를 거듭해서 구축해 나간 것에도 마찬가지의 이유가 있듯이.



설령 그렇게 해서 잘 맞는다고 한들, 몸이 못 버틴다. 그러다 보니 어깨를 다치거나, 엘보우 증상이 와서 보호대를 착용하고 쏘시는 분들이 꽤나 많다. 어떤 분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다 보니 방아쇠수지 증후군이 와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놀라운 건 이럴 때 자신의 자세나 지나친 의욕을 돌아보기보다는 '원래 운동은 부상을 달고 사는 거다'라는 마인드를 갖는 분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우리 육체에 느껴지는 통증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메시지다. 통증이 느껴지는 건 정상이 아니다. 초심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기초 안전 교육을 받은 대로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의욕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장비나 자세로 쏘고 있지는 않은지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것은 무릇 삶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을 따른다. 지금 내가 힘든 것은 어쩌면 과거의 내가 뿌린 씨앗에 대한 수확물일 수 있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다면 힘들수록 열심히 더 파종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희망을 담아 뿌린 씨앗이 미래에 어떻게 나에게 달콤한 열매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오늘은 한의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 침을 맞고 누워있을 침상 위에서 과거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도 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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