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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29. 2024

화살 시(矢)에 담긴 철학적 의미

활 쏘는 노잼 선비 주의보

어릴 땐 부모님이 시키시니 억지로 공부를 해서 한자 공부가 마냥 지루하고 하기 싫은 것으로만 여겨졌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명리학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자에도 눈이 간다. 특히 글자 하나에도 그 뜻이 유래가 된 나름의 이유와 통찰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글자를 만드신 선인들의 지혜가 상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활이나 화살과 관련된 한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살 시(矢)다. 화살 시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유래를 보면 화살촉과 반듯한 화살대의 모양을 본따서 만든 상형문자임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화살의 본질적인 목적인 '살상'의 기능적인 측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곧음'의 모양새에 집중했음이 눈에 띤다. 여기서 곧다는 것은 비단 화살의 단순한 모양을 묘사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 네이버 한자사전



그것은 화살은 마땅히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것일 테다. 화살은 자고로 바르고 곧아야 한다. 화살에 붙어있는 화살 깃도 마찬가지다. 울퉁불퉁 불규칙한 모양의 화살은 그만큼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아 멀리가지 못하고 날아가는 모양새도 예쁘지 않다.


바르고 곧은 화살이 바르고 반듯하게 과녁까지 잘 날아간다. 결국 곧다라는 표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곧게 나아감'이다. 그리고 그것은 화살의 지향점이다. 동시에, 그 지향점에 이르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올곧고 바르게 다잡는 데 있다. 자신이 반듯하고 매끈한지 돌아보지 못하고 날아갈 방향만 쳐다보는 것은 곧게 나아감에 이르는 방식이 아니다.



화살 시(矢)에 입 구(口)를 붙이면 우리가 익히 아는 알 지(知)가 된다.

화살에 대해 입으로 말한다는 것인데, 무엇에 대해 떠드는(?) 것이 안다는 것이라고 하는 걸까?


ⓒ 네이버 한자사전


네이버 한자사전에 보면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폼이 안 난다(?). 보다 그럴듯한 해석이 필요하다. 참고로 한자의 글자의 뜻을 해석하는 '자해(字解)' 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타당한 근거와 논리만 있다면.


사람을 호도하는 게 아니라 살리는 학문을 가르치는 최화복 선생님은 알 지(知)에 대해 이렇게 해석을 하셨다.


화살을 쏘는 자는 자신의 자세뿐 아니라 날씨와 풍속 등까지 두루 잘 살피어 파악해야 한다.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듯,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알고서 갈팡질팡하지 않고 심신이 안정된 상태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는 것. 그게 '앎'이다.




얼마나 멋진 해석인가. 활을 쏘는 궁사라면, 활을 심신수련의 도구로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누군가 알 지(知)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위와 같이 멋드러지게 대답해주도록 해야한다.


화살에 저항이 심하면 멀리 날아가지 못하거나 날아가는 모양새가 어쩐지 비리비리하다. 날아가다가 이내 '톡'하고 과녁에 한참 못미친 거리에서 떨어지고 만다. 갈팡질팡하는 삶의 모습은 저항에 부딪히며 힘 없이 날아가는 화살을 닮은 듯하다.


곧은 화살이 일직선으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듯이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주저함이 없다. 주저함이 없으니 실천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선택지 앞에서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주관이 바로서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르게 선 몸과 마음에 뿌리 깊게 내린 굳은 신념에 실천이 뒤따를 때 그것을 '참된 앎'이라 일컫는다.

지식이나 정보로서, 혹은 가슴에 품은 신념만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 지도자였던 S.N 고엔카는 이를 두고 '바와나 마야 빤냐'라고 하였다. 바와나 마야 빤냐는 고타마 싯타르타 부처가 전하는 지혜의 3단계 중 참된 앎을 일컫는 말이다.


지혜 계발의 세 단계

한 의사가 병자에게 약을 위한 처방전을 주었습니다.
환자는 집에 가서 의사에 대한 굉장한 믿음으로,
매일 약 처방전을 암송합니다.
이것이 지혜의 첫 번째 유형인 수따-마야 빤냐(suta-mayā paññā)
즉, 들어서 얻은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환자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의사에게 돌아가서 '약은 왜 필요한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라며
처방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그것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지혜의 두 번째 유형인 찐따-마야 빤냐(cintā-mayā paññā)
즉, 지적인 분석을 통해서 얻은 지혜입니다.

마침내 환자는 약을 먹습니다.
오직 그때에야 환자의 질병은 사라집니다.
이 효과는 오직 세 번째 단계인 바와나-마야 빤냐(bhāvanā-mayā paññā)
즉, 수행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로부터 옵니다.

-S.N 고엔카


화살은 곧고 바라야 하도록 그 존재의 이유를 안고 태어났다.

그것을 자각하고 그에 맞게 스스로를 관리할 때 일직선의 비행이 가능해진다.

흔들리듯 주춤대는 비행이 아니라 깔끔하고 주저함이 없는 힘찬 포물선을 그리면서.


궁사는 모름지기 화살의 바름을 점검하듯 스스로의 바름을 점검하고,

화살이 일직선의 아름다운 비행을 하듯 저마다의 삶의 과녁을 향해 올곧게 나아갈 따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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