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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r 14. 2024

활터가 무슨 절간이냐?

습사무언習射無言의 필요성

1950년대 수원화성 동장대 활쏘는 풍경 ⓒ수원화성박물관


활을 쏠 때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이른바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 한다. 활을 쏘는 궁사라면 누구나 처음 활을 배울 때 이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이론과 다르다. 물론 개별 활터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끌벅적 떠들면서 쏘는 분위기인 곳도 있다. 같은 활터여도 시간대마다 다르기도 하다. 사대에 서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습사무언이라는 주제는 국궁이라는 것이 '전통적 가치'와 '현대사회에의 적합성'과 관련된 이슈의 도마 위에 줄곧 오르곤 한다. 지키자는 주의는 그것이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전통이고, 여전히 지금에도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습사무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불필요한 허례허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선비들은 그랬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냥 재밌게 쏘자고 모여서 쏘는 건데 잡담 좀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 혹자는 '활터가 절간이냐'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을 따를지 말지에 대해 논하기 전에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는 게 우선이다. 습사무언은 단지 활터라는 곳은 도서관이나 사찰처럼 엄숙하고 경건한 곳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지금은 필요 없는 구시대적 산물, 꼰대적 산물도 결코 아니다. 이유도 모르고 따르는 맹목적 추종은 활쏘기라는 유구한 전통의 문화를 배타적 교조주의로 전락시켜 버리고, 조금만 고루하고 답답해 보이는 옛 문화는 무조건 구습이라며 탈피와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무근본주의의 무뢰배나 일삼는 교양 없는 행위가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은 개인적 영역이 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시비를 가리는 데 단지 개인의 취향에 의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활을 쏠 때 말을 삼갈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화살을 활에 걸어 과녁까지 내보내는 그 3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모든 몸동작 하나하나에, 자신의 몸 내부에 흐르는 기운의 유주(경락의 흐름)를 살핀다. 또한 화살이 나가고 나서는 자신의 쏘임새를 복기하는 반구저기反求諸己의 과정을 밟는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언제 옆사람과 수다를 떨고 있겠는가. 함께 곁에서 활을 내는 다른 궁사들이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각자의 활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순전히 결과적인 차원이지 그것이 나의 집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침묵 속에 자신을 살피는 것은 결국 다른 건 다 됐고 나는 과녁에 많이 맞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진지하게 활쏘기에 임하면서 자신의 수양 도구로 삼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도움이 되는 필수적인 절차인 셈이다. 그러니 습사무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그것의 필요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테다.


조용한 사대는 차분한 분위기로 사대에 선 궁사들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을 선사한다. 활시위가 휘릭- 착-하면서 화살을 날렵하게 날려 보내면 이윽고 들리는 소리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과녁에 관중했음을 알리는 소리요, 다른 하나는 '습~' '쯥~'하는 소리나 '에이씨' 하는 아쉬움의 탄식. 종종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동반되기도 한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화살이 나가는 소리, 과녁에 맞거나 탄식하는 소리밖에 없지만 각자의 내면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격하게 요동치는 독백이 마치 비바람을 동반한 천둥번개 같이 들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맞아서 만족함에 뿌듯하여 내면이 평화롭든, 과녁은 분명 가만히 있는데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내 화살만 피해 가는 것 같아 야속함에 마음 속이 요동을 치든, 우리는 그 답을 각자의 내면에서 궁구해야 한다. 결국 활쏘기의 진정한 과녁은 저 멀리 145미터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한다.


오늘도 나의 활쏘기는 관중하는 소리보다 탄식의 '쯥' 소리를 더 많이 내지만, 아무렴 어떠랴. 시선을 내부에 두면서 습사무언의 경지를 유지한다면 어떻게든 오늘도 활을 한수 배우고 온 것이다.








射法吾自知。

활쏘는 법 내 스스로 안다고 여겼을 때에는

滿而後發之。

다만 가득 당긴 다음에 쏘았을 뿐이었네

升降多禮節。

당에 오르 내리며 예법과 절차 많음 알았고

揖讓有容儀。

읍양하는 동안에 넉넉한 위의가 생기나니

直體皮奚主。

몸을 바르게 할 뿐 어찌 과녁에 뜻을 두리

正心中必期。

마음을 곧게 하면 적중 또한 틀림없는 일이라네

於斯可觀德。

여기에서 그 성한 덕례를 볼 수 있으니

君子取爲䂓。

군자는 이를 취해 법도로 삼는다네.


-조선 후기의 학자 성종극의 시문집인 <석계집>에 실린 활쏘기와 관련한 오언율시 中

-군산 진남정. 청람 윤백일(역),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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