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단남 Mar 28. 2024

전통과 스포츠 사이에서

옳다 믿는 것 vs대중이 좋아하는 것

자신만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인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재미와 동기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대중성을 놓치기 쉽다. 운이 좋게 대중과 나의 지향점 사이에 교집합이 상당 부분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1971년 천양정 (c)한국저작권위원회


대중이 원하는 것을 만들며 사는 것은 ‘나’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부품처럼 쓰이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되는 기분이 싫어, 삶에서 독립선언을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나만의 것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상당할 터.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시시각각 변하는 입맛만을 맞추다 보면 자신의 것이란 개념은 서서히 증발되고 공허감이 찾아든다.


제23회 전주시장배 및 제60회 전주 천양정 전국 남녀 활쏘기대회(c)새전북신문


운명학 상담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는 내게 이것은 계속되는 화두로 남아있다. 내가 원하는 상담과 대중이 원하는 상담은 다르다. 나는 명리나 타로가 혹세무민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이치를 터득하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미 ‘음지의 상담소’ 이미지가 강한 이쪽 업계에서 삶의 이치나 깨달음에 관해 운운하는 건 아직까진 요원해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배우고, 지금도 수련해 나가고 있는 전통 활쏘기를 알려주신 두 스승님들은 이러한 문제에 관해 전통과 대중화 사이에서 당신들이 추구하고자 하시는 바를 넌지시 일러주신다. 단순히 현재 국궁 인구가 적다고 이를 더 널리 알리고 부흥시키기 위해 서양식 스포츠화 시켜 재미요소만을 더하고 전통을 허례허식 취급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승님들은 ‘잘못된 지식과 체계로 숫자만 불리면 오히려 아니함만 못한 지경에 이른다. 대중화란 올바른 것을 널리 알린다는 뜻이다. 올바른 대중화만이 느려도 오래가는 방법이다.‘ 고 가르침을 전하신다.


실제로 2000년부터 근 20년이 넘도록 우리 활의 전통 사법과 사풍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보여온 온깍지 궁사회는 느리지만 확실히, 그들이 그렸던 ‘올바른 대중화’를 위한 발걸음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개 모임이었던 작은 단체는 어느새 20기가 훌쩍 넘는 동문들을 전국 각지에 배출했으며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는 사단법인으로까지 발전을 했다.


현대인은 조급하다. 빠른 결과를 내기를 바라는 대중은 느리게 가라는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는다. 소위 브랜딩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대중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국룰처럼 여기는 이유는 일단 그것이 듣기에도 좋을뿐더러 현실성 없는 피터팬의 꿈같다는 혹평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메시지가 송곳처럼 날카로워 섬뜩할 정도라면 지지층이 두터워질 수 없다.


현실적인 관점에 대한 지향성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길에 대한 불확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의 길을 기왕에 걷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믿고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품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면 말이다. 즐겁지 않다면, 그것이 옳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의 길이 아니요, 또한 우직하게 지속해 나갈 수도 없다.


느리더라도 확실한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이 활이든, 내 인생 전반이든.





이전 17화 보이지 않아도 쌓이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