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단남 Apr 04. 2024

굴러 들어온 돌에게 고함

품격 있는 방문객에 관하여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자리에 가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 혹은 입장료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뭐든 해도 된다는 아주 특별한 권리라도 부여받은 것 같은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인간이 지닌 품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남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이 어떻고, 현관 디자인이 어떻고, 집이 찾기가 왜 이리 어렵냐는 둥 불만부터 쏟아내는 사람.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뽕을 뽑아야 한다면서 식은 보지도 않고 뷔페만 축내고 있는 사람. 입장료를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관광지를 마음껏 훼손하는 사람. 청소부가 이러라고 돈 받는 것 아니냐며 자기 방이었으면 하지도 않을 수준으로 사무실을 더럽게 쓰는 사람. (나열하다 보니 열받아서 중단)


과거에는 군자의 덕목 중 하나였던 활쏘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가끔씩 존재한다. 특히 내가 머무는 개방형 활터의 경우는 밖에서 온 궁사들의 왕래도 잦기 때문에 그런 경우를 왕왕 목격하곤 한다.


하루는 외부 활터에서 온 '구사(활을 쏜 지가 꽤 된 베테랑)' 한 분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는 남의 활터에 방문한 객(客) 임에도 불구하고, 주인 행세를 했다. 사대에 설 때 맨 왼쪽 1번 자리에 마치 당연히 자신의 자리라는 듯 서거나 (보통 활터에서는 1번 자리는 활터의 대표자인 사두의 자리로 비워두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우리 활터 사우들에게 그렇게 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조언까지 일삼았다. (뭐 이런 굴러들어온 돌이 있나)


내가 들은 또 다른 구사의 만행은 더욱 가관이었다. 우리 활터에서는 보통 3순(5발씩 총 3차례)을 내고 나서 다 같이 연전(화살을 주우러 가는 것)을 하러 가는데, 자신의 활터에서는 2순마다 간다면서 자신이 있는 동안은 2순마다 연전을 하자는 것이다. 보다 못한 우리 활터의 접장님들이 한소리를 했고 결국 언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아무리 활을 배운 지 오래되었다고 한들, 100발 100중 하는 명궁이라고 한들, 교양과 품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심지어 그들은 남의 활터에 방문하면서 그 흔한 음료수조차 사 오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 취할 행동으로 예상되는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래도 우리 활터가 시민들에게 오픈되어 누구나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엄연히 비용을 결제한 자신도 주인 행세를 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똑같이 돈을 내면 동등해지니 궁력이 높은 자신의 말에 가장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 것일 테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c) 영화 <킹스맨>


품격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이 개인의 품격을 자아내는가? 용모, 말투, 행동, 사회적 지위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다 부차적이다. 언제나 마음이 형식을 앞선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지론이다. 속으로는 온갖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호화롭게 차린 차례상보다 반찬 하나를 올리더라도 조상에 대한 예를 진심으로 갖추는 것이 훨씬 더 낫다. 품격을 떠올리면 일반적으로 뒤따르는 조건들은 모두 외적인 요소들인 경우가 많다. 외적인 조건은 내면이 올바를 때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내적인 요소가 부재한 외적 요소는 허례허식에 불과하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품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그 지위에 오르도록 만든 올바른 정신이 품격을 결정한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 품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태도가 단정한 겉모습을 만든다. 외적인 것만을 우선적으로 논하는 것은 스스로를 공갈빵과도 같은 존재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킹스맨에 필적할만한  K-품격(?)


어떤 하루는 모 대학 국궁 동호회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사들고 와서 는 먼저 나와 활을 내고 있는 궁사들에게 정성스레 인사를 했다. 그들에게선 '나도 돈을 냈다 이거야!' 하는 어정쩡한 권리 의식이나 대접받고자 하는 마인드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 정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바깥에 따로 마련되어 가장 인기가 적은 사대로 가서 활을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싹싹하다며 우리 활터 접장님들은 그들이 사 온 음료수를 개봉하여 같이 마시자며 그들에게 다시 나눠주었다.


젊음이 만든 눈치가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요즘 시대는 젊다고 더 조심하며 알아서 처신하는 시대라고 보긴 어렵다. 다른 대학교 모임에서 온 학생들은 자신들 멋대로 메뚜기 마냥 이 사대 저 사대 이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중간에 들어오는 입장인데도 기존에 활을 내고 계시던 접장님들에게 해당 사대로의 입장 가능 여부를 묻지도 않는 것은 고사하고, 떡 하니 사대의 중간에 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 번 사대에 들어가면 3순을 마치기 전엔 이동하지 않아야 하며, 중간에 들어가게 될 경우 기존의 사람들에게 허락을 구하며 입장해야 하며 가장 뒷자리로 서는 것이 예절이다.


나이가 젊은 많든, 궁력이 길든 짧든 그것은 아무래도 중요치가 않다. 중요한 것은 딱 하나, 마음가짐이다. 남의 장소에 방문한다는 손님의 마인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고자 하는 지고지순한 마음. 그 부드럽고 수용적인 태도가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배경과 지식과 상황과 만나 저마다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그것이 인사성이든, 음료수든, 허락을 구하는 태도이든 뭐가 중요하랴. 모두 지극한 마음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수순일 뿐이거늘.


활 쏘는 자세를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절교육이다. 이걸 두고 꼰대라고 한다면 글쎄, 스스로가 활을 쏠 자격이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비단 활뿐이랴. 바른 마음가짐은 만사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품격이라고 말하고 싶다.


품격을 내다버린 단적인 예


이전 18화 전통과 스포츠 사이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