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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r 21. 2024

보이지 않아도 쌓이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기가 어려운 것이 활인 것 같다. 활이란 것이 너무나도 심오하여 작은 균열하나에도 화살은 과녁을 비껴간다. 균열은 몸에서 일어날 수도, 마음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움직임 없이 고요하고 굳건한 자세는 그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며, 그것의 역도 성립한다.


하나를 신경 쓰면 다른 하나를 놓친다. 어느 날은 신통할 정도로 잘 맞다가도, 어느 날은 무슨 마라도 끼었는지 도무지 맞지 않는 날도 있다. 화살이 과녁과 맞닿는 순간 그 직전까지 느껴지던 발끝부터 손끝까지 이어지는 기감이 쾌감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몸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음에도 어영부영 과녁에 맞는 경우도 있다.


이것인가 하면 저것인 경우가 있고, 저것인가 싶으면 다시 이것이다. 누구는 밥 먹듯이 몰기(한 번 사대에 서서 5발 모두를 명중)를 하는데 나는 1년에 한 번 꼴로 한다. 나도 안다. 내 활쏘기는 방황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활은 제 주인을 닮는다. 내 인생도 방황의 연속이다.


초등학생 때는 만화가가 꿈이었다가, 고등학생 때는 교육제도를 개혁하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교육부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다가, 재수를 하면서는 잠시 꿈 없이 남들 가는 대로 SKY 경영학과만을 바라보았다. 20대 때는 스타트업 취/창업을 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전전했다. 30대에 들어서는 마음, 철학, 영성 등에 관심이 높아지더니 이내 소위 '운명학'이라는 분야에 종사를 하고 있다. 갈지(之) 자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동하는 것이 지난날의 내 삶이다.


허나, 멀리서 보면 갈 지이지만 작게 보면 한 일(一) 자다. 나는 인생의 항로가 자주 바뀌었을지언정, 매 순간 그 항로에 충실하며 살았다. 이 쪽이 내 길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보다는 그저 매 순간 내 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가장 도드라지는 점 중 하나는 진심과 끈기가 아닐까. 나는 토끼보단 거북이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명(命)의 이치를 궁구 하다 보니 드는 짧은 식견으로는, 그 모든 순간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당시의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더 커다란 '계획'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임계점을 넘길 때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개개인은 그 변화가 일어나기 직전의 어떤 극적인 계기만이 변화를 일으킨 전부라고 생각해 버리지만.


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아도 쌓이고 있다. 지금의 방황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이유 있는 숙성의 시간이다. 그날그날 내가 얼마나 맞혔는가에 천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자기 몸을 관찰하고 일관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안 맞는다고, 다음 순에 바로 자세를 훽훽 고치지 말고 정말 그것이 원인이 맞나 수차례 확인하라. 바람이 분다고 자세를 틀어 쏘지 마라. 같은 자세여도 바람을 극복하기 위해 더 강하게 힘을 실어 보내는 법을 연구하라.


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이 어디로 갈지 안다면, 쏘는 순간 이미 몸이 안다면,  안 맞더라도 뭐가 중요한가. 남들 눈엔 안 맞아 지지부진하다고 보이던 것이 사실은 끓는점에 도달 중인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누구나 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돋보이는 대운(大運)이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임계점을 넘긴다면 연발연중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수순일 따름이다. 남들이 나보다 빨리 그 임계점에 도달한 것을 부러워 마라. 아직 나의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




금번 삭회(월례회) 사진. 너무나도 안 맞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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