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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Dec 04. 2021

삐까뻔쩍 통유리 신사옥으로 고통받는 존재들


맹긍류 스티커(버드세이버)가 부착되어 있는 도로 위의 방음벽


애인과 함께 잠실행 경기 광역 버스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다가 방음벽에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니 얼마  애인이 통유리로  건물새들이 날다가 부딪혀 죽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 떠올랐다. 내가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는 새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유리창이나 방음벽에 붙인 맹금류의 모양을  스티커였다. 이를 버드세이버(Bird Saver)라고 부른다.



고층 건물들로 가득 찬 빌딩 숲을 올려다보면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바로 빌딩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부분이 통유리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건축에 드는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고,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며, 다양한 모양의 건축물 건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통유리의 건축물은 화려하다. 반질반질 광이 나는 유리창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들이 수채화처럼 스며든 장면은 도심의 풍경을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만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도심이 눈부심 화려함이 매년 억울하게 희생되는 수만 마리의 생명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어떨까. 통유리에 투명하게 비친 바깥 풍경을 실제 풍경으로 오인한 새들이 날다가 부딪히는 사고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2019년 3월에 발표한 조류 투명창 충돌 발생 현황에 따르면 통유리 건축물에 부딪혀 피해를 보는 야생 조류의 수는 연간 약 765만 마리에 달한다.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명 방음벽에서도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방음벽에 부딪히는 야생 조류의 수는 연간 23만 마리로 추정된다. 이는 건물 1동당 1.07마리, 투명 방음벽 1㎞ 당 164마리가 충돌한다는 말과 같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멸종 위기종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 종들도 충돌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리창이나 방음벽 등에 버드세이버를 부착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충돌 예방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국립 생태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맹금류 모양을 한 버드세이버는 움직임이 없어서 천적이 아니라 단순 풍경으로 인식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맹금류 스티커를 인식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방향을 살짝 틀어도 다른 곳은 여전히 투명한 부분이라 충돌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생태원과 환경부가 발표한 '야생조류 충돌 저감 최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새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새가 날면서 통과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크기인 가로 10㎝× 세로 5㎝ 간격의 무늬를 최소 6㎜ 이상의 두께로 설치하거나, 불투명한 자재를 이용해야 한다. 또는 자외선을 반사하는 아크릴 물감으로 투명한 시설물에 지름 6㎜ 이상의 점을 가로 10㎝× 세로 5㎝ 간격으로 찍어도 효과가 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제시한 야생조류 투명시설물 충돌저감 가이드라인 (ⓒ국립생태원)


야생 조류 충돌을 줄이기 위해 여러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경 단체와 시민 봉사자들을 주축으로 투명 방음벽 등의 시설에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부착하는 작업들이 전국적으로 이뤄지면서 충돌로 인해 사망하는 조류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권경숙 사무국장은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가 부착된 방음벽에는 충돌 사체가 10건 중 1~2건으로 감소하는 등 효과가 크다며 신규 설치되는 투명 방음벽에도 스티커 작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기존 통유리 시설들에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부착하는 것과 동시에 새롭게 지어지는 시설에는 통유리 사용을 막아야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야생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조례에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다. 조류의 충돌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건축주에 방지책을 '권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법적 강제성이 없으므로 여전히 통유리나 투명 방음벽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야생 조류의 충돌 문제가 아니더라도 통유리창은 문제가 많다.  태양광을 그대로 반사해서 주변 거주민과 건물 밖을 거니는 사람들에게 빛 반사로 인한 피해를 야기한다. 최근에는 경기도 성남시의 네이버 사옥 통유리 외벽의 태양광 반사로 인한 주민 피해를 대법원이 인정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고, 지난 3월에는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내에 있는 초고층 아파트의 태양 반사광으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생활방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



또한 통유리창은 지구 온난화에 악영향을 끼치는 온실가스 배출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전면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열 차단이 되지 않아 에너지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권 도시인 미국의 뉴욕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유리 외벽으로 된 고층 빌딩을 새롭게 짓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인근 주민의 시력 건강에 해를 끼치고, 지구 환경에도 좋지 않으며, 매년 많은 수의 동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통유리 시설을 언제까지 허용해야 할까. 인류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자연과 벗 삼아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문제점을 직시하고 보다 확실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idaegu.com/newsView/idg201905290075

https://www.news1.kr/articles/?3745958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3049

http://omn.kr/1vwcl

https://daily.hankooki.com/lpage/society/202110/dh20211026141302148510.htm?s_ref=nv

http://www.ltn.kr/news/articleView.html?idxno=32346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5/297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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