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카페 문 앞에 놓인 한 팻말에 우연히 시선이 닿았고, 나는 잠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팻말에 적힌 한 단어 때문이었다.
팻말에는 귀여운 강아지 그림과 함께 'Dog Parking'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말로 번역하여 '주견장'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단어가 다소 해괴망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가 '주차'시킬 대상인가? 개가 무슨 자동차라도 되느냔 말이다.
나는 이 단어의 유래가 궁금하여 인터넷에서 '주견장'에 대해 더 찾아보았다. 검색 결과는 10건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다. 'dog parking'을 검색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구글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영어로도 검색을 해봤지만 내 검색 능력의 부족 탓인지, 그 단어가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주견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널리 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국내 검색엔진에서 발견한 단 한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단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답답한 마음에 단어 자체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사전을 뒤져봤다. 주견장은 주차장에서 가운데 글자만 '차車'에서 '견犬'으로 바뀌므로 주차장의 한자어 뜻풀이를 살펴봤다. 주駐는 '머무르다' 혹은 '머무르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장場 은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다. 그러므로, 주차장은 '차를 놓아두는 장소'가 된다. 따라서 주견장은 개를 놓아두는 장소인 셈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상으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문제가 있다. 머무르게 한다는 뜻을 지닌 주견장의 '주駐'는 사람이 어딘가에 머무르는 상황을 가리키는 '입주入住', '주거住居'라는 단어에 쓰이는 '주住(살 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駐라는 한자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주인主(주인 주)'이 '말馬(말 마)'에 올라탄 형상이다. 즉 오래전 말이 운송수단의 역할을 했을 시절, 말을 머무르게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였던 것이다.
'Dog Parking'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dog parking'이라는 단어는 신조어인지 사전에서 찾을 수 없어서 'parking'의 의미를 각종 영영 사전을 통해 찾아보았다. 사전들은 하나같이 'parking'을 'vehicle(탈것, 또는 운송수단)을 일정 시간 동안 지정된 장소에 세워두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었다.
영문의 다양한 최신 표현의 사례까지 보여주는 Urbandictionary.com까지 살펴봤지만 강아지와 관련해서 그 단어를 쓰는 경우에 한정 지은 별도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고, 다른 사전과 마찬가지로 '탈것'을 세워두는 것이라고만 풀이하고 있었다.
'탈것'을 보관할 때 쓰는 단어를 생명체에 할 때 쓰고 있다니, 아무리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단어 자체에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강아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주견장의 취지나 필요성에는 동감한다. 반려견과 함께 외출했을 때 함께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잠시 들려야 할 때 견주 입장에서는 난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를 그렇게 만든 것은 굉장히 아쉽다. '강아지 대기 장소', '강아지 쉼터', 'Doggie wating zone' 등 훨씬 나은 대안들이 있는데 꼭 그 단어여야만 했을까?
나는 지금 그 단어를 최초로 만들어 사용한 사람에게 비판적 사고가 없었다거나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비폭력 불복종 정신을 천명했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말이다.
그가 사망한 1948년 이후로 동물에 대한 처우는 지금까지 상당히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심심찮게 생명체에 대한 무심함을 마주할 때는 슬픔에 잠긴다. 더 나아진 것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욕심이 나나보다.
비단 주견장이라는 단어가 아니더라도 개선되어야 할 점들은 여전히 많다. 오래전 인류의 생존에 있어 동물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식, 패션, 관광 상품, 전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 동물에게 의존해 온 탓에 하루아침에 모든 분야에서 동물의 자리를 대체할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데에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와 이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인의 시선이 닿는 범위 내에서만큼은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자신이 기르는 동물이 친구나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혹은 유튜브에서 보이는 강아지나 고양이 영상을 보고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반려동물을 넘어서 인류 전체가 현대 사회에서 동물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의 방식들에까지 시선을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