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내지 말 것

by 청윤 단남
ⓒ Gaon Song




명상을 한다.

그것도 매일 2시간씩, 벌써 10개월째다. 그런데 요새는 명상 권태기가 왔다. 일명 '명태기'

이유가 뭘까. 작년 4월에 명상 코스에 다녀온 이후로 조석으로 1시간씩 잘만 해왔는데 말이지.

요새는 명상이 귀찮거나 부담스럽다. 그래서일까. 아침에는 1시간씩, 못해도 30분은 하는데 저녁 명상은 손을 놓아버린지 오래다.


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니 일단 좀 바빴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애인과 함께 독립출판으로 책을 한 권 냈는데, 둘 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모든 것이 서투르고 오래 걸렸다. 글을 쓰고, 고치고, 또 편집하고, 인쇄하고, 판매하고, 포장하고, 택배를 부치고 나니 몇 개월이 후딱 지나갔다. 어느새 저녁 명상은 뒷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바쁜 시기가 지나가고 난 뒤인 요즘에도 웬일인지 나는 저녁 명상을 자꾸 미루고 있다. (오늘 저녁에도 미뤘다). 이상한 일이다. 곰곰이 앉아 더 생각을 해보니 큰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기는 하는데, 내 삶이 크게 달라졌다거나, 내 마음이 무진장 편해졌다거나, 마음 심지가 눈에 띄게 굵어지고 단단해졌다거나 하는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내가 쉬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문득 조바심이 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2시간씩이나 투자하는데, 이거 혹시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안 되겠다 싶어 명상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왜 명상을 하니?'


질문을 들은 또 다른 내가 대답했다.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어서.'


간단했다.

그게 내가 명상을 하는 이유다. 마음의 자유, 마음의 해방.

무슨 실리콘밸리에서 명상이 유행한다고 하니, 미디어에 보이니 좋아 보여서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닿기는 어려운.

그래, 영화 <쿵푸팬더>에 나온 '이너 피스'가 딱 거기에 해당하겠다.


영화 <쿵푸팬더>


내 목표를 다시 한번 떠올리니, 그것이 명상 몇 개월 한다고 얻어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삼라만상이 다 부처라고는 하지만,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명상 코스에서 열심히 가르침을 설파하셨던 고엔카 선생님도 수행은 평생하는 것이라 했거늘,

나는 이제 겨우 채 1년도 지속하지 못 해놓고서는 어느새 결과를 바라며,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구나.



***



무언가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그것과 친해지고 내 몸과 마음에 어느 정도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빨리가 중요한 현대사회에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이라 여겨질지는 몰라도, 진리는 원래 무겁게 움직이는 법이니까.


여기저기 잠깐씩 발만 담그며 이렇다 할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은 얼마나 가벼운가. 사람이 묵직함이 없고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바람 위의 깃털과도 같다면, 그의 말과 행동에서 신뢰감을 느끼기는 퍽 어려울 것이다. 무언가를 묵묵하게 쌓아 올려 나가는 시간, 그리고 그 축적된 것들이 서로 시너지를 이루며 새로운 것으로 변모하는 시간이, 식품으로 비유하자면 발효과 숙성의 시간 같은 그런 시간이 사람에게도 분명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서두름이 없어야 한다. 조바심과 불안함이 연료가 되어 피어나는 서투름의 연기를 내뿜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맑디 맑던 내 마음이라는 하늘을 희뿌옇게 오염시킨다. 깨끗하고 투명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언제나 명징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깨어있음이,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 빠르게 도달하려 하는 조바심을 감지하고 그것에 휩싸이려 하지 않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모두에겐 각자에게 맞는 속도와 리듬이 있다. 소로의 말처럼 우리 각자만의 고유한 '고수의 북소리'에 맞추어 자신만의 춤사위를 펼쳐나가면 된다. 조바심을 느낄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무언가를 채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에게 맞는 호흡과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를 독려하기 위해 쓰여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춰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에서



그렇게 됐을 때 어떻게 세상이 변해갈지 나는 참 궁금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생각이 단절되고 획일화되어있는, 무의식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세상, 영화 <매트릭스> 속 이야기 같은 세상에 비해선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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