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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14. 2022

[주간단남] 2월 2주 차 아침 생각

22.02.06(일)-22.02.12(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2.06 (일)


(..)

이래야만 마땅하다는 어떤 상태나 기분, 컨디션 등에 대한 집착이 되려 그 상태에서 나르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 의무감, 당위성의 덫에 묶여 있다면 그 행동에 지속성은 생기지 않는다.


(..)

행동이 결여된 지식은 쓸모가 없다. 지식이 올바르게 쌓이면 저절로 사람의 내면을 달라지게 만들고, 그것은 장녀스레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일련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단순히 축적만을 위한 축적을 한 '지식 무더기'는 컴퓨터에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는 오래된 파일들과 다를 바가 없다.


(..)

무엇이든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려고 할 때 가장 큰 원칙은 집중력을 기르고, 시간 관리법 등의 효율성 증진을 위한 단순 스킬을 늘리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진짜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의 리스트를, 정말 다른 것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질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

실패하고, 도태되어 낙오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움직이는 연료 역할을 하고 있다. 화석연료가 지속 가능성이 없듯이 두려움이라는 연료 역시 수명이 짧다. 그리고 화석연료가 대기를 오염 시키듯이 두려움에 의해서 내린 의사결정들과 그에 따른 행동들은 인간의 영혼을 좀먹고 만다.


우리 모두는 재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내 영혼과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행위들로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가야 한다.




22.02.07 (월)


(..)

그들은 구태여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존재할 권리가 있듯이 그들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생각을 바꿔 달라 호소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30분 동안 집중해서 쓰기 위해 타이머를 맞춰두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것이 내게 '기준 시간을 초과했으니 속히 하던 것을 마무리 하세요!'라고 외치는 듯 하다. 이제는 이것이 내가 바짝 집중하는 것을 돕고자 했던 원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기준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승자박이다.




22.02.08 (화)


(..)

피아노를 다시 배우러 가야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백신 패스로 중단되기 이전까지 내가 애초에 피아노를 꾸준히 배워 온 이유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반대로 하고 있었다. 내키지 않은데 이유를 만들어서 그것을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이미 하는데 그것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뭔지를 역으로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간 피아노를 쳐왔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치고 싶으니까 치는 거지! 영혼의 목소리는 에고처럼 크고 명확하지 않아서 논리적으로 따져 묻고, 분석하려 드는 에고에 비해서 그 의중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냥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 끌리고 궁금하다. 해보고 싶고 자꾸 눈길이 간다. 살면서 주변에서 종종 그와 관련된 신호들이 자꾸 포착된다. 이것들이 영혼이 무언가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소중한 신호를 쉽게 놓치고 만다. 왜 우리는 늘 이유를 찾고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가? 여기엔 어떤 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리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하나에만 진득하게 열중해라.', '돈이 되는 일이 아니면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라. 그 시간에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라.' 등등 우리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

변화를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성이 더 요구될 것이다. 다양성은 억지로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빨리 얻어진다. 모두가 이래야만 한다는 '정답'을 정해두고 모두가 맹목적으로 한 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서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살핀 뒤, 그 내면이 이끄는 대로 과감하게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할 때 인간은 저마다 타고 난 고유한 개성에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모두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우리 모두가 앵무새처럼 살고 있어서 생겨난 일들이다. 앵무새처럼 살다가 지쳐버리거나, 앵무새가 말하는 정답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 누군가가 쌓여가는 좌절감이 모여 끝내 폭발하여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앵무새들에겐 '정답'이 있기에 당연히 괴물이 되어버린 '개인'을 죄악의 원인, 안정된 정답사회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돌연변이 취급을 한다. 정답사회가 원인이라면 왜 모든 사람이 괴물이 되지 않느냐며 비난의 화살을 오로지 개인으로 돌릴뿐이다. 앵무새들의 관심은 오로지 정답을 전도하며 사회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에만 있다. 그것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흔들리지 않으며,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

결국 모든 앵무새들의 존재 이유는 각자의 삶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 받고 싶은 존재들의 몸부림인 셈이다. 순수한 생명체로서 세상에 내려왔을 때, 앵무새가 되기 전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이유, 존재의 가치가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결정되는 세상 속의 숱한 경험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정답'이라는, 갑옷 역할을 하는 앵무새 깃털을 뒤집어 쓰고서 오늘도 낙오되지 않으려 열심히 정답을 퍼다나르는 '날갯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세상 속에서는 자신도 누군가로 인해 앵무새가 되었듯 자신이 또 다른 순수한 생명체를 앵무새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된다. 


(..)

다행인 점은 언제나 끝내 앵무새로 남지 않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답을 벗어던졌다는 측면에서는 그들도 '괴물'과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은 적어도 '인간다움'까지 벗어던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괴물과 앵무새보다도 훨씬 더 인간다운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는 정답사회에는 사라지고 없는 따스함과 상호 존중의 태도가 남아있다. 공생이란 무엇인지,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강요된 가치체계가 아니라 스스로 구축한 가치를 믿고 따른다. 그들은 처음 지녔던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았거나, 잃었다가도 다시 회복한 자들이다. 우린 그들을 '괴짜'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괴짜가 아니라 '진짜'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지녔던 태초의 진실이다.


22.02.10 (목)


(..)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만 신경을 너무 쓰다 보니 모든 관심이 그리로 쏠려버린다. 이렇게 되면 진짜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아서 펜을 통해 무언가가 종이로 흘러들어 나올 수 있을까? 주객이 전도됐다. 글씨 교정 연습은 별도의 시간에만 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최대한 온 몸의 힘을 빼고 내 생각과 펜의 휘갈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르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의 댐의 수문을 활짝 개방하여 그것이 폭포마냥 콸콸 흘러 넘치도록 하고, 손에 쥔 펜은 마치 흐르는 의식의 수로를 세차게 흐르는 관념의 강물을 끌어오는 관개수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닭으로 시작해도 결국 알을 낳고 알에서 시작해도 결국 알을 깨고 나와 닭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출발점이 달라도 순리대로만 움직인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현재의 위치나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좌절하고만 있기 보다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러한 순리의 흐름에 , 거대한 풍요와 감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영원의 순환고리에 동기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그 흐름을 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일뿐, 저절로 이뤄지고 펼쳐질 것이다.



22.02.11 (금)


(..)

민망함부터 논하기 전에 일단 당당히 시도부터 하는 용기를 보이자. 결과는 늘 나오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결과가 궁금하다면 그 원하는 결과를 네가 먼저 세상에 내놓아라. 세상은 본디 거울과 같아서 네 태도와 행동을 고스란히 되비춰 너에게로 되돌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을 '직업'으로의 가능성으로만 바라보는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도구'로서 다양한 것들을 습득하는 재미주의자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 현명하리라. 손에 익은 좋은 몇가지 도구들을 여럿 가지고 있을수록 인생도 더 재미있어지고 다양한 가능성들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삶의 이런 다채로움을 사랑한다.



22.02.12 (토)


(..)

철없어 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점잖은 척, 아닌 척 하며 가면을 쓰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그 회색빛 가면이 우리의 진짜 얼굴이 되어버릴 테니까.

(..)

지금보다도 예술이란 영여그이 벽이 허물어지고,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술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우리 모두가 하는 것이 곧 예술이 되는 세상이 올까.

(..)

모닝페이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지만, 이제는 그 다음을 바라볼 때이다. 바로 완전한 몰입. 그리고 또 하나, 이것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망상 따위는 버리기.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이든 진정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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