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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15. 2021

잡식 4년, 채식 2년 도합 6년째 연애 중

초식 커플이 사는 세상

사람 간의 관계에서 먹는 것은 중요하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유대감과 친밀감이 형성된다. 김 부장은 오늘 점심으로 내장을 인심 좋게 가득 담은 순댓국이 먹고 싶은데, 박 대리는 건강한 샐러드 한 끼를 먹고 싶다면 둘이 함께 하는 점심 자리는 각자에게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년째 연인 사이인 민경과 나는 2년째 '비건(Vegan)' 생활을 지향하며 살고 있다. 4년은 잡식으로, 2년은 채식으로 이렇게 계속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늘 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맛있는 것을 함께 먹기 위한 메뉴를 골랐다면, 지금은 각자의 미각의 만족을 넘어 더 큰 목적을 위한 메뉴를 고른다.



2015년 대학생 시절 지인의 소개로 민경이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함께 먹은 메뉴는 '치맥'이었다.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고기나 생선은 우리에게 특별한 음식이었다. 서로의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날엔 꼭 스테이크를 썰었고, 두 사람 모두 김치찌개, 제육볶음, 돈가스와 초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 목록에 과일이나 채소가 낄 자리는 없었다.



어느 날 우리에게 큰 위기(?)가 닥쳤으니, 바로 내가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게 된 것. 이유는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나는 당시에 일주일에 6일씩 힘들게 일하던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체지방률은 30%에 육박했고, 정신적으로도 지쳐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하루 5끼 닭가슴살과 계란, 고구마, 현미밥, 샐러드만 먹으며 유명하다는 보디빌더 선생님에게 PT도 받아보고, 간헐적 단식도 해보고, '키토 제닉(Ketogenic)' 식단도 해봤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 채식, 더 정확하게는 '자연 식물식'이었다. 자연 식물식을 했을 때가 가장 살도 많이 빠지고 소화도 잘 되었으며, 컨디션도 좋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채식 결심기


민경이는 건강을 챙기려는 내 뜻은 존중해 주었으나, '평생' 채식을 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남들 하듯이 '다이어트 시즌'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시적 결심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먹을 것을 좋아하는 민경이었기에 앞으로 데이트 때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리라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내 결정을 응원해 준 그를 위해 데이트 때는 원래 먹던 대로 가리지 않고 먹기로 약속했다.



내가 채식을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민경이도 돌연 채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채식 계기는 나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유튜브에서 낙농업의 끔찍한 현실을 다룬 짧은 영상과 공장식 축산업의 참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나서 고기를 당장 끊어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만일 처음에 채식 식단을 민경이에게 강요했거나, 반대로 그가 데이트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내 결정에 반대하기만 했다면 우리의 관계는 아마 더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린 서로를 존중했고, 함께 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물들었던 것이다.



민경이의 채식은 단순히 건강 때문에 시작한 식단으로서의 나의 채식과는 달리, 그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채식을 하는 것이 동물뿐만 아니라 지구환경에도 훨씬 이롭다. 이렇듯 미각의 충족이라는 개인적 동기를 넘어 동물과 환경을 위해 동물에서 비롯되는 음식, 의복, 서비스 등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을 '비건(Vegan)'이라고 하는 것도 민경이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서촌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정갈한 채식 한 끼



그 후 지금까지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 비건 음식점에 가거나 메뉴 자체가 원래 비건인, 가령 계란을 뺀 콩국수 같은 음식을 먹는다. 언제나 고기 일색인 음식만 찾던 과거의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변화다.  


  

건강하게 먹기 위해 우린 함께 영양학 수업을 듣기도 했다. 채식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오히려 고기를 즐겨 먹을 때보다도 더 건강하게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덕분에 우리 둘은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시간도 늘었고 채식하기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환경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과거에는 먹는 것은 단지 오늘 무슨 색 티셔츠를 입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채식을 하면서 내가 매 순간 고른 음식이 얼마나 동물을 포함한 지구 환경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관심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계절마다 새 옷을 사던 예전과는 달리 옷도 잘 사 입지 않는다. 일회용 컵 대신에 텀블러를 쓰고, 일회용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빨대를 쓴다. 손을 씻고는 페이퍼 타월이나 핸드 드라이어를 쓰지 않고 손수건으로 닦는다.




코로나 이후의 삶은 달라야 한다



회현의 어느 비건 도넛 카페에서 포장을 해왔다.


코로나와 기후변화는 우리 삶의 기존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꼭 비건인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코로나 이후의 삶을 준비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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