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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16. 2021

딱히 관심받고 싶어서 한 건 아닌데

 

ⓒ Freepik


  우리 사회는 ‘정답 사회’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이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중적인 것이 답이라고 믿고 살기 마련이겠지만, 한국 사회는 유독 더 대중적인 ‘답’에 집착하는 것 같다. 남들이 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나대지 않고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르면 쉽게 눈에 띈다. 쉽게 눈에 띄면 주목을 받기 일쑤이고, 주목받으면 질문 세례가 쏟아지는 것이 다반사다. 국내 인구 중 채식인은 1~3%에 불과하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그런 관심과 주목을 받기에 안성맞춤(?)이다. 음, 우리가 딱히 이런 관심을 받고 싶어서 채식을 한 건 아닌데 말이죠.



  쏟아지는 질문 중에는 간혹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 채식이라는 우리의 ‘다름’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목적이 있지만 대놓고 그 의도가 드러나지는 않는 질문들. 왜냐하면 ‘채식주의자’의 존재는 종종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비채식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갖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다수와 따르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혹은 어렵고 쉽지 않은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방어기제는 우리 쪽에서 채식에 대한 강요는커녕 권유도 하지 않고, 그저 만족하고 잘 살고 있다는 말만 해도 종종 발동한다.



이런 방어기제가 드러나는 질문의 유형은 아래와 같이 나눠볼 수 있다.

 


유형 1: 채식의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 언급하기 

예)

‘고기 안 먹으면 단백질 부족한 거 아니야?’

‘채식하는 스님도 고지혈증 걸렸다는데, 그거 건강에 안 좋은 거 아니야?’


유형 2: 채식의 어려움을 특별히 강조하기

예)

‘그럼 라떼도 못 마시고 피자나 빵도 ‘모두 다-아’ 못 먹는 거야?’

‘직장인은 사회생활 ‘거-의’ 못 하겠는데?’


유형 3: 어떻게든 모순점이나 트집을 잡아내기

예)

‘식물도 생명인데 어떻게 생각해?’ 

‘동물권? 인권 문제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시기상조 아닌가?’ 

‘농사짓는 데 드는 제초제나 농약도 환경에 안 좋은 건 마찬가지 아니야?’



물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을 듣고 나서 보이는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질문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나 편견에 대해 알게 되면서 태도가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궁금증이 더 컸던 경우다. 반면에 대답을 듣고는 그것을 다시 반박하는 것에만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일 경우, 경계가 느슨해지기는커녕 기존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면 궁금증보다는 방어기제였을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채식하면 단백질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단골 질문에 나는 채식으로도 충분히 권장량 이상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순수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의 경우 ‘오, 풀에도 단백질이 있었어?’와 같은 식으로 대답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게 된다. 자신이 알던 사실과 반대되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던 한국인의 4대 문장 시작 요소


 

반면에, 애초에 공격이 목적이었던 사람은 티가 난다. 첫마디부터 ‘한국인 4대 문장 시작 요소(아니, 근데, 진짜, X발 / 여기에 ‘솔직히’를 덧붙이기도.)’가 등장한다. 식물성 식품에도 단백질이 충분하다고 대답하면, ‘아니 근데, 콩 단백질 먹으면 여성 호르몬 나온다던데?’와 같이 논점(채식은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한지)에서 벗어난 대답을 하거나, 급기야 ‘아니, 솔직히 고기 안 먹으면 힘이 안 나지.’처럼 논제(채식) 자체를 부정해버리기도 한다. 무슨 대답을 해줘도 그들에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이런 경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서로의 시간과 감정만 소모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에 더 이상 거기에 반박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르게 산다는 건, 순수한 호기심과 방어기제가 뒤섞인 질문에 끝없이 답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아갈 순 없는 것일까? 자주 하는 질문들을 모아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녀야겠다. 티셔츠 대신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처럼 카드로 만들어서 지갑에 넣어 다니는 것도 재밌겠네. 하하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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