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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갠드무 Apr 19. 2018

우물 안 개구리

#879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할 때면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익숙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걸 미리 해 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거나 그와 관련된 정보들을 수집해야 조금이라도 일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잘 몰라서 정보를 모을 때는 이런 느낌이 든다.
 
정보가 보험이다.

이 보험이라는 느낌 때문에 중독된 듯 이것 저것 정보를 많이 수집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나의 정보 처리 능력인데 이걸 간과하기 일쑤다.
그래서 모르는 것 투성이로 잡다한 정보가 넘치는 상황이 펼쳐지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르는 난감함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낸다.
그러다 뭐든 해보려 찔러보다가 일은 꼬이고, 그러면서 나의 머리 나쁨을 확인한다.
이상하다.
나는 머리가 좋았건 것 같은데, 머리 나쁜 걸 확인하다니!
그동안의 나에 대한 내 판단은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좋았다고 느꼈던 그 기억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던 걸까?
아마, 무언가를 해냈을 때 크게 노력하지 않고 별로 힘들이지도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성취해낸 것들은 내게 익숙했던 것이고 아마 누구라도 그정도는 별 에너지 소모 없이 해냈을 것이다.
단지 익숙했었다는 걸 상기시키지 못하고 쉽게 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익숙했던 건 협소한 분야일 뿐이라는 걸 간과하고 그저 해냈다는 기억에 취해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은 일이 잘 되지 않는 이 나쁜 머리가 불편하고 불편하고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그게 원래 나였고, 별거 없는 사람이었으니, 그 불편함은 당연하다.
그저 그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일 뿐이다.
문득,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은 꼭 나에게 하는 말 같다.
그 옛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먼 미래의 한국 사람에게 할 말이 있었단 말인가?

그럴리 없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별거 없지만 소크라테스가 조언 할 정도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으니까.

#essay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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