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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갠드무 Jun 06. 2018

철갑의 끝

#927



장수들은 전투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철갑옷을 입었다.
철갑을 두르는 건 그만큼 몸이 야들야들하다는 말이다.
아마 몸이 돌처럼 단단했다면 철갑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피부를 철갑과 같이 단단하게 두른 동물들도 그렇다.
그 동물들은 야들야들 맛있는 속 살을 갖고 있다.
맛있기 때문에 그들은 공격을 많이 당했고 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철갑 같은 것으로 진화시켰다.
 
그 철갑같은 동물의 포식자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단단한 철갑을 힘겹게 뚫어야만 했다.
아마도 포식자들이 겪어야 할 그 힘겨운 과정 때문에 철갑을 두른 동물들의 맛이 더 좋게 느꼈졌을 것이다.
어려운 과정 끝에 얻은 결과물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처음에 철갑을 뚫고 얻은 먹이가 맛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과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맛있게 느껴지도록 포식자들의 미각이 진화했을 지 모른다.
잘 삯힌 홍어가 처음 먹을 땐 맛없지만 코가 뚫리고 입 청장이 허물어지는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려움 끝에 얻은 결과가 원래 목적과 맞지 않아 허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움이란 과정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값어치가 있는 것 같다.
철갑의 끝에 얻은 맛이 맛있게 느껴지도록 진화하는 것처럼, 그게 어거지로라도 합리화하려는 심리적 본능 때문일지라도 말이다.

#essay #에세이


http://www.instagram.com/gand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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