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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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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 che


2023. 02


"깔깔깔 ~! 요즘 누가 츄브를 팔아유~ 재미난 양반이네."

"네?"

"그까이꺼 을매나 헌다고, 그런 거 없슈~"


여사장의 '깔깔'거리는 웃음에 물건을 나르던 늙수그레한 철물점 직원이 참견을 한다. 점원의 오른뺨에 붙어있는 콩알만 한 점이 도드라져 보였다.


"사장님, 뭔 일 이래유?"

"긍께 말여, 이 손님이, 시상에~!, 손수레 바쿠 있잖여? 바쿠 빵구 났다고, 바쿠 츄브를 찾는 겨~"

"진짜유?, 깔깔깔~ 바퀴 그거 을매나 한다고, 바쿠도 아니고 츄브를 찾는데유~. 츄브 안 나온 지가 언젠디~"


점원이 태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봐유~ 그런 거 없슈~! 바쿠 을매나 한다고..., 츄브 찾는 손님은 5년 만에 첨이유~ 맞쥬?"

"그려, 갈치가 5년 전인가 츄브 찾았을 겨~. 그려, 맞어."

"아, 그런가요? 인터넷 마켓에선 팔던데..."

"일읎슈~ 그럼, 거서 사유~!"


직원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돌아섰다. 태영은 직원의 갑질에 뭔가 억울했다. '손수레 바퀴의 튜브를 찾은 게, 이 정도로 놀림을 받을 만한 일인가?' 농사일에 두 발 손수레는 필수다. 고구마, 양파, 마늘 등등 작물을 옮길 때도 사용하지만, 퇴비나 유박등을 옮길 때나, 잡석, 흙을 옮길 때도 여간 유용하지 않다.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미정 부부가 그 어리석은 짓을 했다.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밭이다 보니, 구배가 심했다. 구배가 있는 밭을 평평하게 만들려, 높은 곳의 흙을 퍼 낮은 곳으로 옮겼다. 손수레로 퍼 나른 횟수가 어림잡아 천 번 이상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레바퀴에 펑크가 많이 났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자전거 펑크 패치로 몇 차례 땜질을 해서 사용했고, 그럼에도 바람이 새서, 인터넷 마켓에서 튜브만 구입해서 교체 사용했다. 그러다가 다시 펑크가 나서, 읍내의 철물점에서 바퀴 튜브를 문의한 게, 여사장과 점원에게 비웃음을 사게 된 이유다. 읍내에 철물점은 두 곳인데, 두 곳 모두 주인이 같았다. 한 곳은 2층 건물에 위치한 작은 점방 크기의 철물점이고, 나머지 한 곳은 커다란 3층 건물 전체를 철물과 건축 자재, 그리고 공구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태영이 부동산 김사장에게 듣기로는 두 건물과 철물점 옆의 커다란 6층 상가 건물도 철물점 사장의 소유라고 했다. 건물의 주인은 박장구라는 50대의 사내였는데, 사람들은 이마가 툭 튀어나온 건물주를 뒤에선 짱구라고 불렀다. 짱구의 마누라가 이번에는 '삽대가리'로 태영을 살살 놀리며 모지리 취급을 했다.


"깔깔깔 ~! 요즘 누가 삽대가리를 팔아유~ 재미난 양반이네."

"네?"

"글고 본께, 전에 츄브 찾던 양반 아녀? 맞네, 맞어!"


커다란 고무통를 옮기던 점박이 직원이 고무통을 내려놓더니, 역성을 든다.


"어따, 허벌나게 무겁네. 사장님, 맞아유. 그 양반이유. 아니, 말여. 삽 그까이꺼 을매나 한다고, 만 삼천 원만 주문 삽을 사는디. 삽대가리? 깔깔깔~ 우덜 가게엔 그런 거 읎슈~. 그만 가유~. 바쁜게."

"아니, 그게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직원은 들은 척도 않고는 '끙' 소리를 내더니 고무통을 매고 건물 뒤편으로 가버렸다. 이번에는 20대로 보이는 안경잡이 청년이 태영의 입성을 위아래로 훑더니 참견을 한다. 청년 이마가 툭 튀어나왔다.


"엄니, 뭔 일 이래유? 뭐가 그렇게 재밌슈?"

"연우야, 말도 말어~!, 이 양반이 시상에, 삽대가리 있잖여? 삽대가리가 깨졌다고, 대가리만 찾는 겨~"

"진짜유?, 깔깔깔~ 삽 그거 을매나 한다고 대가리만 찾는데유~. 대가리만 안 나온 지가 언젠디~"

"긍께 말여~, 삽대가리? 일없슈~! 바쁜께 그만 가유~"


귀촌 이후로 태영이 깨 먹은 삽대가리가 셋, 부러진 삽자루는 4개다. 부부의 밭은 황토라 땅의 굳기가 콘크리트 만큼 단단했다. 농사에는 최악의 흙인 셈이다. 이런 땅에서 고구마, 땅콩 마늘을 캐내려니 아무래도 삽에 무리가 많이 갔다. 같은 이유로 삽대가리를 문의했더니, 여사장과 아들이 낄깔깔 웃으며,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모지리 취급한다. 부아가 치민 태영이 철물점 입구에 진열된 삽자루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삽자루는 왜 팔아요?"


모자의 웃음이 뚝 끊겼다.


"삽자루 얼마나 한다고, 그럼 자루도 팔지 말아야죠!"


짱구의 아내가 코를 몇 번 벌름이더니, 안경잽이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거슨..., 그니께..."


안경잽이가 뜬금없는 얘길 꺼냈다.


"엄니, 재혁이는 8월에 결혼하는디, 내는 은제 보내줄 겨?"

"엄니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슨께, 걱정 말어. 손님, 가유~."


여사장이 태영에게 가라고 손짓을 하더니, 계속 딴소리를 한다.


"울아덜 장가는 말여, 엄니가 올해 안으로 쇼부를 볼 겨."

"내두 장가 가고 싶단 말여~. 재혁이 각시가 간호사라고 하던디? 의사 아니면 결혼 안 할 겨!"

"긍께, 쪼매만 기둘리 봐. 니가 낼 닮았으면 가도 진즉에 갔을 틴디... 해필이문 지그 애비를 닮아서... "

"음마! 엄니, 뭔 소리여? 넘들은 엄니랑 내랑 붕어빵이라는디?"

"언 넘이 그려! 눈깔이 삔나보네..., 근디, 여즉 안 갔슈?"


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영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김형, 요즘 뭔가 이상해요."

"네? 뭐가요?"

"혹시,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어요? 저번에 그 일 때문에 그래요?"

"뭔 소리야, 혁씨가 무슨 실수를 해요?"


혁이 태영의 눈을 바로 보면서 말했다.


"아닌데..., 뭔가 있는데?"

"있긴 뭐가 있어요. 쥐뿔도 없어요. 수연씨 컨디션은 좀 어때요?"

"뭐... 속을 모르니까, 그래도 괜찮아진 것 같아요."


나름 티 나지 않게 혁을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혁에겐 그게 아니었나 보다. 혁은 몇 년 전에 녹촌읍 주민센터 건설 도시팀으로 전입을 왔다. 서울 어디에서 근무를 하다가, 아내의 고향과 가까운 녹촌읍으로 왔다고 했다. 주변에는 장모의 몸이 불편해서 처가 근처로 전입을 왔다고 둘러댔지만, 실상은 악성 민원과 상사와의 갈등으로 몇 년간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에서, 부모 부양을 이유로 수시 인사 교류를 통한 전출을 신청했다. 번화가의 건설 도시과는 청탁과 압력이 많았고, 그를 힘들게 했다.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게 넘어갈 만한 일도 혁은 원칙을 고수했다. 자연스레 민원이 많아졌고, 상사와의 마찰도 잦았다. 몇 년을 기다린 끝에 녹촌읍에서 같은 직급의 서울 전출 희망자가 있어,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입을 선택했다. 수연은 혁의 전출을 반대했지만, 혁은 고집을 꺽지 않았고, 결국 현리에 집까지 짓게 되었다. 꼬장 꼬장한 혁은, 태영과 죽이 잘 맞았다. 태영이 혁과 잘 어울리자 미정은 적잖이 놀랐다. 호불호가 심한 그녀의 남편은 대인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삼십 대 후반에 직장 생활을 그만둔 이유도,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긴 했지만, 대인 관계의 이유도 적지 않았다. 태영은 사람들과 섞이는 게 싫었다. 이곳으로 귀촌하면서 그동안 간간히 이어오던 지인들과의 관계도 모두 끊어 버렸다. 그냥 걸려오는 지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귀촌 후 주변인들과도 마찬가지였다. 태영은 이웃과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 가끔 친해지려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간간히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도 태영이 대면 대면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제 풀에 지쳐 연락이 끊겼다. 다들 비슷했다. 시간이 지나면 의례 저런 사람이려니 한다. 그런 식으로 관계를 단절했다. 물론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듯이 부동산 김사장에겐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혁과의 만남은 헤글러 김사장으로부터 시작됐다. 태영 역시 김사장에게 땅을 구입해 집을 지었고, 이 마을에 정착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거간으로 땅을 구매했다. 김 사장의 먹잇감이 되면, 상대방도 선수가 아닌 이상, 그의 현란한 말발과 전화 테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헤글러'란 타이틀도 그냥 얻은 게 아니다. 그의 당상관 부동산은 읍내 구사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충청도 토박이인 그의 말씨는 삼남 사투리와 서울 말씨가 섞인 퓨전 사투리다. 그는 서울 말투는 기본이고, 경상도, 전라도 말씨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젊어서 경북 어디에서 한 동안 사업을 하기도 했다는데, 부동산 영업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된다며, 한동안 전국 사투리 공부를 했다고 한다. 태영과의 첫 만남에서도 고향을 물어보고는 능숙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친숙하게 접근했다. 그는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흡사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김사장이 태영에게 물었다.


"자네, 부동산 업계에서 내 별명이 뭔지 아는가?

"글쎄요?"


"내 별명이 말여, 헤글러여, 헤글러. 왜 그런지 아는가?"

"헤글러는 80년대 권투선수잖아요? 사장님, 권투 배우셨어요?"


"나가 말여, 사무실에 손님들이 올 거 아녀? 그럼, 딱~ 보인단 말여. 뭐가 보이느냐? 내 손님이 보인단 말여. 저 양반은 내 손님이다 싶으면 말여, 대굴빡에 '내 손님' 이렇게 써있단 말이지. 못 믿것지? 근디, 사실이란 말여. 그럼 말여, 나가 슬금슬금 가서는, 그냥 귀때기를 덥석 물어 버리는 겨, 그럼 게임 끝이여. 그리곤 안 놔~! 귀때기 떨어질 때까지,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겨. 자네도 말여, 사무실에 들어오는데, 대굴빡에 딱 끄적여 있더란 말이지! 냅다 물어 버린 겨! 나한테 귀때기 물리면 끝나는 겨, 안 사고는 못 버티는 겨. 자네도 당해봐서 알잖여? 그래서 나가 헤글러다 이 말이여! 헤글러."


김 사장이 태영에게 어금니를 앙다무는 시늉을 했다. 맞다. 상대방이 번호를 차단해도, 헤글러는 다른 사람의 전화를 빌려 수십 차례 통화를 시도했었다. 그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했다. 태영 역시 그의 전화 테러에 몇 달을 시달리다 결국 백기를 든, 나약한 먹잇감이었다.


"저기 사장님. 귀때기 깨문건 헤글러가 아니라, 타이슨 아닌가요? 타이슨이 홀리필드 귀때기 깨물었잖아요?"

"근가? 뭐 어뗘? 둘 다 깜시 아녀, 그럼 똑같은 겨~."

"사장님, 요즘에 그렇게 말씀하시면 큰 일 나요. 흑인이라고 해야 돼요."

"내가 무슨 홍길동이여? 왜 깜둥이를 깜둥이라고 못하는 겨? 뭐가 문제여! 조까라 마이싱이여~어!"

"허, 참..."


태영은 이 일을 계기로 용식의 가치관이 갑오개혁 즈음에 머물고 있다고 확신했다. 첫 만남에서 김사장은 태영에게 '김 사장님'이라고 했고,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입금하자, '김사장'이 되었다. 귀촌을 하고 안면이 좀 익숙해지자 '김 씨 혹은 자네' 하더니, 급기야 '야, 인마'라고 하대를 했다. 태영이 '제가 사장님 자식이냐?'라고 정색을 했고, 용식은 '동생 같아서' 그랬다며, '김 씨 혹은 자네'로 한 단계 신분 상승을 시켜주었다.


"자네니께, 서울서 대학나왔슨께, 내가 특별히 한 단계 올려준 겨~! 이런 경우는 머리에 털나고 첨이여, 첨!"


그의 안하무인격 행동엔 나름 사연이 있었다. 김사장의 부동산 상호는 '당상관 부동산'이었는데, 그의 증조부가 실제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동안 정 3품 당상관의 벼슬을 했다고 한다. 해방 전까진 녹촌읍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대지주였던 만큼, 이 일대에서 가장 명망 높은 집안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땅이 많이 줄어들었고, 설상가상으로 그의 부친이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다 망하는 바람에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고는 하지만, 마을의 몇몇 노인들은 여전히 그를 보고 상전 대하듯 '도련님'이라고 불렀으니, 날 때부터 도련님 소릴 듣던 용식이 사람 우습게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의 증조부는 친일 인명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었는데, 증조부의 친일 행적에 관한 그의 역사 인식은 이랬다.


"왜정 시대에 친일 안 한 넘 있으면, 나와 보라 이거여! 그땐 다 먹고 살려고 친일 한 겨! 느그 조상은 다를 것 같어? 그렇게 따지문, 너거 할매, 할배도 죄다 친일파여~! 털어서 먼지 안나는 넘이 울 할배한테 돌을 던지라 이거여~!"


김사장은 본인의 나이를 육십 언저리라고 말했는데, 그 나이도 경우에 따라 엿가락 늘어나듯 늘어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가족 이야기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만 했다. 홀아비라고 하기엔 용식의 입성은 무척 깔끔했다. 삼대칠 가르마는 항상 단정하게 손질되어, 기름을 발라 넘겼고, 양복바지는 주름 없이 빳빳했다. 사무실도 검정 벤츠도 그의 입성만큼 깔끔했다. 사무실 테이블은 정리가 잘 되어있었고, 사무실 안쪽 화장실엔 물기 하나 없이 관리됐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사진 속에는 학사모를 쓴 젊은 여성이 김사장과 함께 서 있었다. 생김이 빼쏜 게 그의 딸이 아닐까 싶긴 한데, 확실하진 않았다. 그의 부동산 사무실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바다 방향으로 뚫린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이 아주 그만이었다. 얼마 전 김사장과 점심 식사를 했던 그날도 사무실의 전망은 여전히 좋았다. 얼마 전 신 사거리에 개업한 '신토불이 굴 청국장'이라는 식당이 맛이 좋다며, 용식이 태영에게 밥을 샀다.


"아, 사장님. 볼 때마다 느끼지만, 탁 트인 바다 전망이 예술이에요."

"니미~ 기가 막히기는, 쯥~, 죙일 퍼런 바다만 봐봐, 우울증 올 것 같어~. 커피 한 잔 할 텐가?"

"네, 주세요."

"전망은 말여, 쯥~, 3층 카페 테라스가 왔다여. 안 가봤지? 안사람이랑 한 번 가봐. 쯥~!"


용식이 이쑤시개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장씨네 굴 청국장 괘안치? 그 집이 새로 생겨서 굴을 허벌나게 넣는당께~. 국산 백 프로에 밑반찬도 푸짐허고, 어리굴젓 있잖여? 난 말여 청국장보다 그 젓갈이 땡겨서 가는 겨. 요즘은 그 집만 가네."

"네, 덕분에 잘 먹었어요."


김사장이 핸드폰을 들었다.


"응, 나여. 커피 두 잔. 자네 말고 방울이여!"

"어? 믹스 커피가 아니라, 3층이에요?"

"괜찮어, 나가 시키면 평생 꽁짜여."


용식이 능청스럽게 웃는다.


"시켰슨께, 마시고 가~. 산골에서 허구한 날 마누라만 보면 숨맥혀서 어떻게 살 겨~! 여도 말여, 서울 맹코롬 여자들이랑 노는 룸싸롱도 있어~. 어뜨케, 한 번 시간 낼 텨?"


언젠가 비슷한 얘기를 미정이 있는 자리에서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 미정은 용식을 벌레 보듯 했다.


"저 그냥 갈래요."


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김사장이 역정을 내며 태영의 손목을 잡았다.


"앞으로 나 안 볼 겨? 나 섭섭하게 진짜 이럴 겨! 서울서 대학 나왔다고 사람 무시하는 겨!"

"그게 아니라, 정 사장님이 자꾸 돈 얘기를 하니까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긍께, 알것다고. 안자봐~. 글고, 정마담 아녀! 방울이 올 겨. 창문 좀 열어야겠는디..."


태영은 서슬 퍼런 딸깍발이가 되고 싶었다. '영원히 불가능하겠지...' 용식은 태영에게 유독 친절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중장비를 임대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줬고, 텃세 비슷한 것들도 그의 입김으로 무마되기도 했다. 집이 완공되고는 가끔 주변 맛집에 데려가기도 하고, 때때로 들러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의 친절이 태영으로선 알 수가 없고, 되려 불편했다. 그와 태영은 접점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태영의 대인 방어술이 용식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웃으며 찾아오는 사람을 문전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젠가 용식이 급전이 필요하다며, 태영에게 이백만 원 정도를 빌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오죽하면 나한테 아쉬운 소릴 할까' 싶어, 긴말 않고 빌려준 일이 있었는데, 태영은 그 일 때문이 아닐까 막연이 짐작할 따름이었다. 김사장의 컨테이너 사무실 옆에는 김 사장 소유의 3층 건물이 있었는데, 용식의 아버지가 생전에 지은 반백년 가까이 된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낡은 건물이었지만 그런대로 월세 수입이 괜찮았는데, 신사거리가 생기고부터는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용식이 창을 여는데, 사무실 문을 열고 머리칼이 하얗게 센 사내가 들어왔다.


"용식 성님. 저기 말유... 킁킁... 이거슨 청국장 냄시 아녀?"

"말혀."

"아니, 킁킁, 이 냄시는 우리 집 청국장 냄시가 아닌디...? 킁킁"

"뭔 일인디?"

"이거슨 국산 콩으로 맹근 청국장이 아닌디, 킁킁, 수입산 청국장 냄시여..."


양사장이 용식을 쏘아봤다.


"성님. 진짜 이럴 겨?"

"먼 소리여?"

"장 씨네쥬? 맞쥬? 그 씨벌눔 땀시 매출이 반토막이 났는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겨! 이건 선 넘은 겨~!"

"아녀~"

"월세는 내한테 꼬박꼬박 받아먹음서, 돈은 장 씨네 가서 쓰는 겨! 오입질이 별거유? 이게 오입질이유~!"

"아녀~, 점심에 꾸미네 가서 떡라면 먹은 겨. 동생 맞지?"


김사장이 태영을 바라보며 오른눈을 몇 차례 깜박거렸다.


"네?"

"성님! 이딴 식으로 나오면 말유~ 내도 신 사거리로 옮기는 수가 있슈! 알아서 혀유~"

"양사장! 아니랑께 그러는가~"


양사장이 문을 쾅 닫고 나가고, 바통을 이어 받 듯 정마담이 커피잔과 보온병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마트에서 물건 살 때 들고 다니는 녹색 바구니다. 진한 화장품 냄새가 사무실에 퍼졌다. 김 사장이 작게 구시렁거렸다.


"염병, 또 저년이네..."


보온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혜영이 말한다.


"어머, 양사장 오빠는 왜 저런데? 용식 오빠, 점심에 청국장 먹었구나?"

"양사장 저 새끼는 뻑하면 방 뺀다고 협박이여. 이건 완전 갑질이여, 갑질..."


"오빠, 하루에 몇 번씩 콜 하는 거야~! 올라오면 되잖아~!"

"니미, 오늘은 첨이여. 니는 입만 열면 구라여... 글고, 자꾸 올라 댕기면 건물 닳잖여!"


정마담이 능청스러운 사투리로 퉁긴다.


"지는 뭐 날라댕기남유~?"


김사장이 정마담의 손등에 슬쩍 손을 올리며 너스레를 떤다.


"자네는 헤깝해서 건물 닳을 일 없잖여~. 안 그런가?"


김사장의 손을 '짝'소리 나게 치며, 떼어 놓는다.


"오빠, 테라스에 난간 좀 손봐줘. 난간이 덜렁거리고 녹도 너무 심해. 사고 날까 봐 불안해."

"그려, 공업사 김 씨한 티 손 보라고 허지 뭐."


용식의 건물 3층엔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혜영은 테라스에 데크를 설치하고 테이블을 가져다 놓았는데, 시원한 바다 전망에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땡큐~!, 우리 갓물주 오빠는 커피 둘, 프림 셋, 설탕 하나."

"옳커니!"

"서울 자기는 둘둘 하나, 맞지?"

"네."


정마담이 아까부터 태영에게 슬쩍슬쩍 눈신호를 보냈다. 태영은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뛰었다.


"어뜨케..., 우리 방울 양은 바쁜가?"

"오빠 말도 마! 내가 걔 때문에 죽겠어. 마이킹 땡긴 게 얼만데. 미친년이."

"뭐여~!, 짼 겨? 마이킹 얼마여?"

"몰라,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없고... 그니까, 오빠도 나 좀 그만 불러, 응?"

"아니, 씨벌! 모르긴 뭘 몰러? 니 돈이 내 돈인데... 헬기장은 뭐랴?"

"지가 데려온 년이니까 알아서 한다는데, 낼까지 기다려보고..., 안 오면 잡아와야지. 어차피 다 잡히게 되어 있어. 째면 마이킹 따블인데, 나야 돈 벌고 좋지 뭐. 멍청한 년..."

"그런가? 따블이여? 차용증에 박아놨음 뭐... 간수 잘 혀~."


"자기야, 저번에 마트에선 섭섭했어."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랬어요."


"자기, 내 전화 왜 안 받아?"

"저기, 제 전화기가 고장이 났어요."

"용식 오빠, 서울 자긴 내가 뭐, 사람 잡아먹는 줄 아나 봐?"


김사장이 정마담의 허벅지를 힐끔거리다, 돌연 정색을 했다.


"안 먹어? 잡아먹잖여?"

"오빠, 뭔 소리야?"

"녹촌읍에서 야한테 따먹힌 놈이 연대로 따지면... 아니지 대대급이겠구먼. 여튼, 일열 종대로 씨팔 키로여~,

씨팔 키로오!"


정마담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주먹을 들어 김사장의 어깨를 '퍽' 소리가 나게 때렸다.


"농담도 적당히 좀 해. 진짜~!"

"뭐가 농담이여~! 야 땜시 파투난 집이 한 둘이 아녀! 야 별명이 '가정 법원'이여~ 자네도 조심혀."


정마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씨팔~! 그만하랬지~! 왜 선을 넘어!"

"농담이여, 농담. 왜 화를 내고 그러는 가~."

"말 가려서 해. 진짜, 나도 카페 확 옮기는 수가 있어!"

"미안 타고 하잖여, 시방, 2층 공실인거 몰러! 니도 내한티 갑질하는 겨~!"


태영이 '기회가 있을 때 자리를 떴어야 했다.'라고 후회하는데, '계세요?' 하며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예, 어서 오세요."


김사장이 자리를 치우라고 정마담에게 손 짓을 한다.


"사장님, 커피 잘 마셨어요."

"그려, 살펴가시게. 자주 좀 오게."


용식이 태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구빡 잘 보게, 저 양반도 내 손님이여."


사무실을 나오며 흘끔 보니,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다. 당연하지만, 그의 이마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흰색 재규어 자동차와 빨간 우체국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저 양반, 귀때기 간수를 잘해야 할 텐데...' 하면서 액셀을 밟으려는데, 뒤늦게 사무실에서 나온 정마담이 차를 막더니, 재빠르게 조수석에 올라앉는다. 도어 락 버튼을 누르려했지만, 한 발 늦었다.



"자갸~, 김 사장 얘긴 다 뻥이야."

"네. 알아요."

"알지?, 그 인간 입만 열면 구란거."

"네. 그만 내리세요. 저 가봐야 해요."


사방으로 투명한 유리창이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밀폐된 공간. 콧소리가 잔뜩 섞인 정마담의 음성에 태영의 가슴속 어딘가에서 다시 작은 북소리가 둥둥둥 울렸다. 거세되지 않은 수컷은 정욕과 약속 사이에서 평생 투쟁 할 따름이다.


"자갸, 전에 말한 거 생각 좀 해봤어?"

"생각이고 말고, 저 같은 농투성이가 무슨 여윳돈이 있어서 땅을 사요? 어서 내리세요."

"바보야~! 그거 조만간 엄청 오를 거야. 자기니까 진짜 싸게 넘기는 거야. 30%만 지분으로 받아. 말 좀 들어."

"제가 돈이 없다니까요."

"대출 조금만 받으면 되잖아."

"사장님, 제가 뭐가 있어야 대출을 받죠."

"자기야 말로, 사장님 소리 좀 하지 마! 짜증 나~!"


정마담이 태영의 손등을 아주 살짝 때렸다.


"자기야, 내가 급전이 필요한 건 맞아. 맞는데, 이왕이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남한테 넘기긴 너무 아까워서 그래."

"제가 가족도 아닌데 무슨..., 그렇게 도와주고 싶으면, 그냥 현찰로 도와주세요."

"주면 받을 거야?"


혜영이 배시시 웃었다. 바로 저 웃음이다. 태영은 저 웃음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


'저 웃음을 좋아해도 되지 않나? 나만 아는데. 아무도 모르잖아. 게다가 이건 욕정 따위가 아니야. 그저 순간의 이미지를 추앙하는 거라고...'


"자갸, 뭘 그렇게 쳐다봐?"

"예? 아뇨..."


"용식 오빠가 자기 강남에 아파트 있다던데? 아파트 담보로 대출 좀 받아."

"무슨 소리예요? 제가 무슨 아파트가 있어요? 뭔가 오해하신 거 같은데, 저 전세 살다 왔고요, 그리고 차를 봐요! 이거 모닝이에요. 모닝! 모닝도 그냥 모닝이 아니라 밴이잖아요. 밴도 중고로 450주고 산 거예요. 제가 돈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젤로 싼 모닝밴 타겠어요? 제 나이가 마흔 하고도 둘인데, 이 나이에 중고 모닝밴 끌고 다니면 견적 바로 나오잖아요! 아씨, 쪽팔리게 정말! 그러니까 그만해요."


"그러게, 차 바꿨네? 전에 타던 비엠은?"

"그 차, 판지가 언젠데... 그거 팔고 중고로 산 거예요. 저 돈 없어요. 이제 그만하세요."


강한 봄 볕이 그녀의 두꺼운 분칠에 반사됐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적지 않은 잔주름과 기미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고, 입가의 솜 털도 굵어져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잘 익은 복숭아와 같은 농진한 매력은 여전했다. 좁은 차 안이 그녀의 휘발성 분내로 가득 찼다. 머리가 몽롱했다.


"자긴,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그냥, 이뻐서 그러는 거야."

"뭔 소리예요?"

"그게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나 자기 좋아하나? 그런가 봐! 어머, 어떡해!"

"적당히 하세요. 안 내리면 제가 내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영의 귓속엔 '좋아하나'란 속삭임이 맴돌고 있었다.


"자갸, 저기 하얀 맨션 보이지? 저거 용식 오빠가 지은거야."

"네."


정마담이 손가락으로 멀찍이 흰색 건물을 가리켰다. 아파트 형태로 지어진 흰색 건물은 최근에 완공된 5층 건물이었다.


"나, 저기 3층에 살거든."

"네... 네?"


"1203, 까먹지 마."

"1203?"

"도어락 비번이야. 3층 1203. 자기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태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차에서 내리려 문 손잡이를 잡던 혜영이 돌연 태영 쪽으로 바짝 몸을 당겨, 그의 귀에 속삭였다.


"오늘 밤에 와."


그녀의 흰 블라우스 사이로 드러난 뽀얀 가슴골. 그 사이에 투명한 땀이 맺혀 있었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순간, 정마담의 혀가 태영의 귓불을 건드렸다. 도파민이 치솟고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끝없이 하늘로 떠오르는데,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미정이다. 왜, 미정이 생각났을까? 죄책감 때문일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러다간 나도 잡아 먹힌다.' 급히 벨트를 풀고 밖으로 뛰쳐나와 소리쳤다.


"사장님, 차 안에 블랙박스 켜져 있어요. 이거 성추행이에요. 지금 나오면 없던 일로 할게요."

"자갸~. 내가 뭘~, 나 그런 여자 아닌 거 알잖아."


크게 기지개를 켠 혜영이 여전히 능청을 떨었다. 태영이 버럭 역정을 냈다.


"사장님! 알긴 뭘 알아요, 어서 내리라고요!"

"키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 대담할까? 태영은 혜영이 궁금해졌다. 문을 열고 나온 정마담이 태영에게 다가와 눈꺼풀을 찡긋하며 속삭인다.


"자기야, 언니한텐 우리 사이 비밀로 할게, 걱정하지 마."

"무슨 소리예요? 블랙박스 녹화 중인 거 안 보여요?"

"태영씨, 이따 봐~."


정마담이 콧노래를 부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배기 헤글러는 김사장이 아니라 정마담이다. 까딱했으면, 홀리필드 마냥 귀때기를 된 통 물렸을 게다. 태영이 자신도 모르게 연신 귀를 문지르는데, 3층에서 검정 페도라의 사내가 태영을 지켜보고 있었고, 건물 뒤편에 몸을 숨긴 사내도 태영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날밤. 태영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귓불에 남아있는 혀의 감촉과 혜영의 속삭임이 끝없이 떠올라 태영을 괴롭혔다. 고개를 돌려 미정을 바라봤다. 방이 더웠는지, 미정은 이불을 차 버리고 배를 반쯤 드러낸 체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잠옷을 내려 배를 가리고, 이불을 덮었다. 겨우 잠든 꿈 속에서 태영은 도어록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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