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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nalogue

입동에 만난 가을빛

#중남미문화원에서 만난 가을

by 김민수

입동,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초미세먼지로 회색빛 도시로 변했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생소한 이름 '중남미문화원'은 경기도 고양시 고양향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렀지만,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이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 수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잊고 살았던 가을빛, 자연을 바라보면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곳을 걸었다.

만일, 이런 풍경들을 중남미에서 만났더라면 온갖 수식어들로 그곳의 아름다움을 전했을 것이다.

아주 묘한, 중남미의 샤머니즘과 가톨릭과 토속신앙이 어우러진 편안한 곳이었다.



한동안 회색빛 도시에서 사진을 찍는 재미를 잃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중압감도 있었지만, 촛불햑명 이후 거리에서 외쳐지는 구호들은 더는 매력이지 않았기에 카메라를 드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가을빛은 여기에도 있으니, 그냥저냥 나의 일상에서 만나는 가을에 감사하며 살았다.

아주 조금의 흔적만, 큰 감흥 없이 남기면서.


무슨 까닭인지 통일로를 지나며 '중남미문화원'이라는 간판을 몇 번이나 보면서도 '남'자를 빼트렸다. 그래서- '중미문화원(?)', 중국과 미국의 문화를 융합해서 보여주는 짬뽕 같은?-이라 생각했고 그곳에 대한 궁금증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곳을 갈 일이 생겼고, 고양향교 주차장에 이르자 이색적인 건물들과 미술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중남미문화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촌스러운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기 시작했고, 부지런히 사진을 담았고, 정원에 있는 미술품들은 가을빛과 어우러지면서 저마다의 모습을 드러냈다.


빛은 적당했고, 서울 하늘처럼 미세먼지도 없었다.

그냥 강렬하지 않은 수채화 같은 사진을 담기 좋은 날이었다. 마침, 가을빛이 더해지면서 정원의 작품들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입동, 이젠 겨울이다.

그 첫날에서야 나는 가을빛 다운 가을빛을 만났다.



이끼는 그들이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을 그들은 터득한 것일까?


소박하면서도 풍만하고 지극히 서민적이다.

세상사에 해탈한 듯한 모습, 이 세상의 아픔이란 아픔은 다 겪어보아서 내 아픈 마음을 조금만 털어놓으면 "내가 너의 마음을 알겠어!" 할 것만 같은. 그래서 눈물이 났다.



가을빛이 다하기 전에 그곳을 다시 찾아야겠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그곳을 일군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분은 나의 감사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림자 노동으로 나는 위로를 받았으니, 그 외의 다른 것들이 내 삶의 궤적과 다르다고 무슨 문제란 말인가?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도 많다.

다만,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의 온갖 고민을 내려놓아도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간다. 내가 없어도... 그런데 왜 그토록 악착스럽게 전투적으로 긴장하며 살았을까? 그곳에서 가을빛을 보면 느낀 내 마음이다.


다시 한번, 가을빛이 다하기 전에 가야겠다. 오늘 만나지 못한 또 다른 것을 만나러.



#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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