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난 청년일 줄로만 알고 있었다.
중년 이후, 나이가 듦에 따라 몸도 점점 쇠해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나이 듦'과 '실버 세대'로 접어들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나이도 좋다!'는 것을 진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하나 둘 잃어버리는 것들과 잊히는 것들이 많아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오늘은 우연히 자동차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책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읽던 책을 잃어버린 사건은 흔치 않은 일인데, 그 책의 분실과 관련한 그 어떤 기억도 나질 않았기에 에 나는 절망했다. 이제 서서히 노년의 증상 중에서 '망각'이 시작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하나 둘 사라져서 마침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일까?
망각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역사는 끊임없이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지만, 삶을 힘겹게 했던, 그래서 이 세상과 이별하고 싶었을 정도로 힘들었던 일들은 망각하는 것도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 둘 망각하기 시작하니 망각이 축복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님, 모두 치매가 있으셨다.
두 분의 복이라면, 나쁜 일들과 아픈 일들과 세상 걱정을 다 잊으셨기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늘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셨다. 심지어는 죽음이라는 것조차도 망각한 듯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그런데 나의 증상은 조금 다르다.
읽었던 책의 내용이 가물거리고, 이전에 썼던 원고들이 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다.
그리고 살면서 아팠던 순간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 아팠던 순간의 가해자들을 너무 쉽게 용서했음이 후회된다. 결국, 용서했다가 보다는 잊었던 것이겠다.
장인어른이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지, 이제 노인네니까....'그런 생각 끝에 장인어른과 내가 이십 년 어간의 차이밖에는 안 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장인어른의 나이가 되는 것도 순식간인 것이다. 이전의 이십 년이 쏜살같이 간 것처럼, 앞으로 보낼 이십 년은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이미, 삶에 이력이 났으므로 더더욱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잊고 살았다.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을....
겨울이 깊어지는 계절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망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것은 축복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지. 여러분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