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액 현상이 만든 이슬
'이슬'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풀 잎에 맺힌 이슬은 다 같은 이슬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마다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냐고요?
하늘에서 살포시 풀숲에 내려앉은 이슬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 온 뒤 풀숲에 내린 비이슬이 있을 것이고, 추운 겨울 서리가 아침 햇살에 녹으면서 만든 이슬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주 추운 겨울날 땅 속의 열기로 올라온 수증기가 얼어 얼음 형태의 이슬이 맺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이슬로 '일액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이슬입니다.
식물이 제 몸에 필요 없는 물을 배출하는 현상 말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소변보기'라고 할까요?
물론, 식물은 제 몸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나 이슬이 많이 내린 촉촉한 아침, 풀잎을 보면 일액 현상에 의해 맺힌 이슬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잎맥마다 숨구멍이 있는데, 그 작은 구멍으로 몸 안에 필요 이상의 물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 몸속에 남아도는 물을 실핏줄처럼 이어진 이파리의 맥을 따라 내어놓습니다.
마치 작은 실개천과 이어지는 냇물, 냇물과 이어진 계곡과 강으로 바다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보는 듯합니다.
그들이라고 가뭄을 타지 않는 것 아닙니다. 목마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필요하지 않다면 내일을 위해 저장하지 않고 비웁니다.
내일에 저당 잡혀 살지 않고, 지금 여기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에 오늘을 저당 잡히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이미 충분한데도 비울 줄 모르고 쌓아둡니다. 그것이 재력이 되고, 권력이 되지만, 그 끝은 어디일까요?
식물이 제 몸의 필요 없는 물을 열심히 내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필요 이상의 물을 품고 있으면 뿌리가 썩습니다. 뿌리가 썩으면? 그의 삶도 끝이지요.
그렇다면 소유하는 인간의 삶의 양식의 끝은 무엇일까요?
긍정적이길 희망하지만, 그것은 희망일 뿐 우리의 현실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으로 인해 당하는 현실적인 고통들로 알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 플라스틱 쓰레기뿐 아니라 저급한 정치인과 사이비 종교인...
저는 단연 제 몸에서 내어놓은 이슬, 일액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염된 물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정화되듯, 저 뿌리에서 잎맥을 타고 오는 중 그들은 정화됩니다.
게다가 작고 오래가지 않으므로 잎에 머물러 있는 그 시간은 오염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 여느 이슬보다도 투명하게 세상을 담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작은 이슬방울 속에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작은 이슬을 가만 바라보면, 그 작은 이슬 속에 나무도 산도 바다도 구름도 하늘도 다 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작지만, 넓은 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넓은 품은 물론 맑음에서 오는 것이고요.
소유하는 것, 그것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비우는 것, 그것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비 온 뒤 맺힌 이슬, 그 이슬방울을 바라보며 멋지고 아름답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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