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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n 29. 2019

장맛비 그친 아침 풍경

# 나의 시크릿가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연한 장미 새순에 맺힌 비이슬


남부지방은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는데 서울은 밤사이 간헐적으로만 비가 내렸다.

구름이 낮고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아직은 비에 젖은 포도의 빛이 진하고 촉촉한 아침은 무더운 여름에 만나기 쉽지 않다.


이런 날은 바람이 깨어나기 전 풀섶으로 달려갈 일이다. 그러나 나는 도심 한 복판에 살기에, 나만이 비밀정원으로 달려간다.


토란잎에 맺힌 비이슬, 노란빛은 루드베키아


오늘 아침에 바라본 비밀정원은 이런 모습이다.


아삭이 고추가 제법 따먹을 만큼 자랐고,
 토마토는 아이의 주먹만 것들이 주렁주렁 열렸고, 
상추는 줄기가 길쭉이 올라와 꺾어먹어야 할 때가 되었고,
들깻잎은 양념장을 해서 먹기에 적당한 크기와 연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며칠 전 베어 먹은 부추는 또 그만큼 자라 있고,
참외는 그늘이라 그런지 줄기만 무성하다.


장미꽃과 이슬


누가 보면 농사꾼인 줄 알겠다.

이 비밀정원을 한눈에 보면 그냥 위에서 소개한, 신선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텃밭'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쪼그리고 앉아 작은 것들과 눈 맞추기 시작하면 다르다.


작은 것들을 바라보면 저마다 '우주'를 품고 있으며, 나는 그 신비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비 온 뒤이므로 당연히 풀섶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물방울 보석이 되어 각기 다른 생명의 빛을 담고 있다.

자기의 빛깔을 주장하지 않고, 오롯이 다른 생명의 빛을 담음으로 저마다 빛나고 있으니 그들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어떠한지를 미리 보고 깨닫는 것이다.


장미와 비이슬


그 신비한 작은 우주들,

그들을 찾아 하나하나 카메라로 담으며 느끼는 희열, 이런 시간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행복이란, 이렇게 작은 조각조각들의 모임이다.


행복은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복들의 수없이 많은 반복이다. 그 작은 행복들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소리를 친들 세상사에 귀를 빼앗기고 눈을 빼앗긴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비에 젖은 장미


나의 '시크릿 가든'엔 소중한 것이 너무 많다.

간혹 성가신 진딧물 같은 것들도 있지만, 흙 속에는 지렁이도 살고, 사마귀도 산다.

운 좋으면 달팽이도 만나고, 두꺼비도 만난다. 올해는 꿀벌도 많이 봤고, 호박벌도 보았다.


"에이,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그렇다.

풀잠자리 알 우담바라도 있다.

도심에 초록공간이 부족하니 나의 작은 비밀정원도 그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공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나의 비밀정원은 점점 풍성해지는 것이리라.


토란잎과 비이슬


나의 시크릿가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먹을 것을 제공해 주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만 품어서가 아니다.

음식물쓰레기들을 고이 품어 양분으로 삼고,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한다. 이렇게 흙은, 깨끗한 것만 품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품어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런 속성들은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도 흙의 심성과 다르지 않다. 바다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으므로 모든 것이 그들을 향해 흘러든다. 바다가 선별해서 그들을 품는가?  오염된 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정화한다. 이것이 바다의 힘이다.


제주도 세화 바다


아, 저 이슬방울 모이고 모여 바다로 흘러간다.

이슬 이야기에서 바다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닮았다.

자연은 모든 것이 닮았다.

저마다 다르면서도 닮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 일부인 나의 시크릿가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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