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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23. 2016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

#47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우리의 눈은 정확하지 못하며,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아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을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창을 통해서 보기 때문이다.


'자기의 창', 그것은 '마음'일 수도 있고 '철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들 중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으며, 그것들은 대부분 아주 소중한 것들이다.


종달리 두문포구에서 바라본 우도


우리의 눈은 찰나의 순간을 본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들이 중첩된 것을 우리의 눈은 볼 수 없다. 


장노출 기법으로 사진을 담으면 비로소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이 담긴 이미지를 보지만, 이미 그것은 사라진 시간이다. 이미 한 장의 사진이 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였으므로 존재하는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중첩의 시간들을 담은 이미지는 존재한다.


죽음과 삶(존재)은 이렇게 서로 잇대어 있는 것이다.

속초 동명항


이런 눈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도 하고, 보이는 것으로 인해 오해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눈'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속내'라고 한다.

'천 길'도 아니고 겨우 '한 길', 그러나 그 '한 길'을 보려면 오래 보아야 하고, 깊이 보아야 한다. 그때서야 아주 조금 보일 뿐이며,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변하는 것이 우리의 '속내'이므로, 나 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종달리 바다에 있는 생개납 돈짓당

그래서 포기할 것인가?

아니, 그러므로 훈련을 해야 한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순간, 들리지 않던 것을 듣게 되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달라지니 말하는 것도 달라진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며, 벙어리의 혀가 풀리는 기적은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생명


바람이 부는 날이거나 바다에 서면 나는 장노출 작업을 많이 한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담고 싶기 때문이고, 보이지 않는 순간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순간들에 대해 사색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면 누구나 보는 것도 보지 못한다.


느티나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을 보는 이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에 치중하라.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머지않아 산 위에 숨겨진 동네처럼 드러날 것이다. 


그때, 
보는 눈 깊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이라면 제대로 된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 당신이 그렇게 살아감에도 누가 알아주지 않고, 보아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기뻐하라. 그만큼 당신의 삶이 제대로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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