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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26. 2016

폐허가 된 골목길에서 만난 풍경

#49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거여동 재개발지구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거여동 재개발지구 골목길을 걸으며 만난 풍경은 '풍경'이라는 단어가 사치인 듯했다.

걷다 보니 이번 봄이 그곳의 마지막 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오랜만에 따스한 봄볕이 마실을 나온 날이지만, 봄볕의 마실이 마냥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날이다.


거여동 재개발지구


재개발지구 너머로 그들의 미래가 보인다.

그러나 과연 다시 그곳에 들어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다들 사연들이 있어 서울 변두리에 정착하게 되었을 터이고, 다들 사연이 있어 그곳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연들일랑 모두 접어두고, 떠나야만 한다.

사람이 살던 곳이었지만, 이젠 사람이 더는 살 수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여동 재개발지구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골목길도 이젠 떠난 이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과 쓰레기에 막혀 걸을 수가 없다.

출입금지라는 폴리스라인은 더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집이라는 표식이며,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험표시다.


그래도 아직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다.

매쾌한 연탄가스 냄새가 스멀거리는 골목길, 그 어느 집엔 아직 그곳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여동 재개발지구에서 만난 풍경


나는 여전히 이 가슴 아픈 골목길을 걸으며 '예술'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단지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내 유년의 시절을 더듬어가며 그 길을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재개발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렸다.

어릴 적 뛰어놀던 흔적들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가에 파묻혔기에 나는 고향을 상실했다.

유일하게 유년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 거여동 재개발지구지만, 이제 그곳은 마지막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도 사라지면, 나는 유형의 고향을 모두 상실할 것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


그곳에도 봄이 온다는 것, 버려진 화분에서도 기어이 싹을 틔운다는 것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어찌도 자연은 이토록 무심 무상하단 말인가?




초등학교 시절 대분의 친구들은 이곳에 살았다.

아이들로 미어터지는 학교는 3부 수업까지 했으며, 대다수의 아이들은 가난했다.

아이들은 연탄을 나르고, 신문을 돌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이맘때면 남한산성으로 칡을 캐러 갔다. 집에 가야 별로 할 것도 없던 나는 그런 친구들을 도와가며 골목길을 함께 누볐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그곳에 살던 이들은 대부분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성공해서 그곳을 떠나고자 하는 꿈이 그것이었다.


그 꿈이 얼마나 슬픈 꿈이었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

그 꿈이 이뤄진 것일까? 유년의 친구들은 대부분 그곳을 떠났고, 딱히 나는 그곳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계절마다 그곳을 걸으며 유년의 추억을 회상하곤 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떠나간 쇠락한 골목,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곳을 걸으며 그곳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기록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그런 기록 자체가 무슨 의미일까 허망하기도 하다. 그 허망함의 뒤편에 그나마 몇몇 흔적이라도 기록했기에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거여동재개발지구


봄볕이 따스해도 이젠 골목길에 나와 해맞이를 하는 노인분들도 없다.

모두 그곳을 떠난 것이다.




문득, 작년이 그리워진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봄볕이 좋은 날이면 골목길에 나와 담소를 나누시는 노인분들이 있어 어슬렁 거리며 골목을 걷는 것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거여동재개발지구


차라리 그 미안함을 안고 골목길을 걸을 때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하나 "왜 찍노?"하지 않는 적막함은 오히려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이제 그 발걸음의 무게 때문에 더는 그곳을 걷지 못할 것 같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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