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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29. 2016

팽나무와 어머니의 손

#50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제주도 조천 -팽나무


바람 많은 제주도의 나무 중에서 나는 팽나무를 좋아한다.

그들을 볼 때마다 '거목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를 가늠해 본다.

팽나무에는 바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뒤틀린 나뭇가지와 옹이가 도드라진 나무들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목이 되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친 손


거친 나무의 표피는 마치 거친 어머니의 손을 보는 듯하다.


나 어릴 적(6-70년대)에는 목욕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았기에 겨울이면 까마귀 발에 얼어 터진 손등이 흔했다.

방 안에 있는 걸레가 얼 지경이었으니 옷도 겹겹이 껴입었다. 그리고, 물론 우리의 몸을 간지럽히는 이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옷에도 숨어있었다.


그러나 그 간지러움 조차도 어머니의 거친 손이 한 번 지나가면  시원해졌다. 그렇게 어머니의 손은 거칠었었다.


팽나무


2003년 제주도에 살 적에 태풍 매미가 찾아왔다.

뜰에 있던 팽나무의 가지가 많이 상했는데 볼썽 사나워 태풍이 지나간 후 인부를 불러 가지치기를 했다.

그런데 잠시 다른 곳을 정리하는데 인부로 온 삼촌은 상한 가지를 정리하지 않고, 상하지 않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어어, 그거 아깝게 자르면 어떻게 해요. 부러진 걸 잘라야지?"

"모르시는 말씀하지 맙서. 나무의 균형을 맞춰줘야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다 마씸."



팽나무


그러고 보니 그랬다.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는 나무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눈에 보이는 나뭇가지만큼 뻗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날 이후,

나는 나무를 보면서 삶의 잔가지를 쳐내는 일,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대한 묵상을 하곤 했다.


팽나무


나무는 계절마다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무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저만큼 자라났고, 거목이 되었을 때에는 몇 년에 한 번씩 찾아가도 변하지 않은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도 그렇게 거목처럼 늘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내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치시고 귀천하셨다. 그나마 귀천하실 즈음에는 몸이 아파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므로 젊으셨을 때보다 손은 조금 더 고왔다. 그것이 내겐 위안이기도 하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거친 손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우리의 어머님은 삶의 잔가지들을 또 얼마나 쳐내셨을까?

다 품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을 아셨기에 쳐낸 잔가지들은 주로 어머니를 위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나의 손

간혹 내 손도 아름다울 때가 있고, 어머나 손을 닮아갈 때가 있다. 그때는 내 손도 거칠어지는 때이며, 내 삶이 머리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닐 때이다.


비로소 삶의 균형이며, 그 시간은 내 삶에 불필요한 허영 같은 잔가지들을 쳐내는 시간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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