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다 예술작품이다.
숲길을 걷는다.
폭염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지만, 숲에서 그 단어들은 무색해진다.
입추가 지났으므로, 숲에는 가을의 전령사인 물봉선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보랏빛 물봉선뿐 아니라 노랑과 하얀 물봉선도 있으니 제법 산세가 깊은 숲이다.
가문비나무 숲에 서니 침엽수의 향기인 '피톤치드향'이 가득하다.
풀보다도 더 작은 가문비나무의 싹을 본다.
"아, 저것이 몇 번의 겨울을 나면 나무가 되는구나!"
하나하나 프레임에 넣으면 예술작품이 된다.
자연은 거대한 예술작품이라 감히 재단할 수는 없지만 다 담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로 인해 내가 간직하고 싶은 만큼만 프레임에 가둔다. 그렇게 프레임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여전히 아름다우니 감사할 뿐이다.
자연은 신의 창작소이다.
단 한 번도 같은 날은 없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이 아니라 이전의 모든 날들의 결과물이요,
그래서 새날이요,
이 세상이 존재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날이다.
'거기에 가면 있을 것'이라는 믿음대로 그곳에 여전히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러나 거기에 있는 그것은 이전에 내가 보았던 그것이 아닌 오늘의 그것이다.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었던 적이 없었으며,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것이 바다라는 예술작품의 매력이다.
숲을 나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으로 향했다.
집, 안과 밖을 이어주는 창은 신비다.
창이 없었다면 집은 얼마나 답답하고 삭막했을까?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아주 작은 창이라도 마음껏 열어놓을 수 있는 창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음증의 도시 서울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각 건물에 갇혀 살아가는 나에게 창문은 바깥과 소통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커튼과 선팅지와 방충망과 철망으로 안과 밖은 철저하게 차단되어야만 했다.
그래도 여전히 창은 필요했다. 그래야 집이므로.
모든 것은 완벽했다.
바닥의 타일에서부터 컨테이너 박스에 쌓인 초록의 술병과 그 옆 가스통은 너무 새 것이 아니라서 잘 어울렸고 담벼락 나무는 너무 크지 않으면서 자유분방했으며 빨래와 천막은 각기 다른 색으로 더불어 조화를 이뤘고 파란 기와는 규칙적인 물결을 이루며 밀려왔고, 마침내 밀려오다가 차양막이 시작되면서는 부드럽게 흐른다.
그래, 모든 것은 완벽했다.
다 갖춰서가 아니라 미완이며, 불편하고, 어수룩하고, 못났기에 모든 것은 완벽했다.
평상에 엎어져 있는 함지박은 극치다.
파란 페인트 사이 송송 뚫어놓은 구멍, 게다가 하얀 페인트가 점점이 뿌려진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평상 아래 정체를 알 수 없어 무한한 상상을 자극하는 저것은 또 무엇이며 장판 한쪽의 오목한 분은 우연이 아니라 지극한 작가의 숨은 의도가 아닌가?
예술 아닌 것이 없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래서 눈이 맑아야 하는가 보다.
물론, 내 눈은 그리 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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