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시절에 항상 좋은기억만 남아 있는건 아니지만
재밌는거 많았죠. 저 같은경우는 동생이랑 동네 오락실가서 거기 철권잘하는 형들 구경하는게 그렇게 재밌었습니다. 어떤 날은 피시방가서 디아블로 하는 고수 아저씨들 템보면서 감탄하고 뭐 그런 사소한 재미들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이해가 되지않지만, 세월의 흐름이라는것은 단순히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늘어나는것뿐만이 아니라 재밌는것들이 사라져가는 과정이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글쎄요. 요즘 재밌는게 무엇인지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유튜브 영상 재밌죠. 흥미로운책을 읽는것도 재밌습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그 어떠한 강렬함과는 비교할 수가 없네요. 초딩때 창세기전3파트2라는 게임을 했는데 살라딘이 발뭉이라는 명검을 얻었을때 쾌감을 지금도 잊지못합니다. 나이 30넘게먹고 내생애 최고의 쾌감은 바로 살라딘이 발뭉먹고 적들 다쓸어버린것 이라고 이야기하면 영 좋지않은 반응일겁니다.
왜 재미가 없는가에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겁니다. 과학계에서는 실제로 나이를 먹을수록 눈과 뇌가 찍는 일상의 촬영(카메라에비유를합니다)속도가 느려지기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하나의 사건이나 일상을 어릴때엔 한번에 1000장씩 찍었다면 나이를 먹고나면 500장정도 찍고만다는것이죠. 그러니 실제로 나이들수록 강렬한 기억은 줄고 시간이 더 빨리흐르는것을 체감하게된다고합니다.
이미 겪어본 재미라 이제는 그것들이 재미없는걸수도 있겠죠. 게임이나 재밌는영상, 하다못해 남자들이 자주보는 성인 동영상들조차 몇번보면 다른걸 찾게됩니다. 불꽃놀이는 1년에 한두번 하니까 재밌는것이지 매일하면 그걸 누가보냐는 어떤 노인의 말이 기억납니다.
무슨낙으로 사느냐라는 질문이 그래서 저는 철학을 담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지금 내가 살고있는 삶의 재미를 대신 느껴줄 수 없잖아요. 삶에 재미를 주는 무언가를 찾았다면 저는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40대형님은 게임을 지금도 즐기십니다. 각종겜을 다하시는데 자신의 삶의낙이라고 하시네요.
게임같은건 어린시절 지나간 장난감같은거지 나이먹을대로 먹고 취미라고 하는게 고작 ㅉㅉ
이런 반응도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문명이 고도화되고 편리함이 극에 달하고 사회속의 각개인이 지극히 파편화된 현재에서, 한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재미를 찾는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재미를 찾아 떠나야하는 구도자와 같은 심정으로 삶의 낙을 찾아야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도자로서 지금 이 땅위에 두발딛고 서 있는셈이지요.
그 무엇이든 좋다고생각합니다. 저도 철없던때 일본애니에 열광하는 친구를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영상속 여자들은 현실이 아닌데 도대체가 무슨짓인가 했었죠. 나이를 좀 더 먹은 지금, 과거의 멋모르던 저의 핀잔이 지극히 좁은식견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있습니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는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었음을, 그저 의미없어보이는 행동일지라도 개인이 재미를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 행위는 그자체만으로도 존중할만한 이유가 있는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선 안에서 각 개인의 재미를 추구하는것은, 그 한사람이 살아갈 삶을 추동하는 근원이 됩니다. 지치지않는 삶의 동력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당장 살아내야하는 삶의 질을 바꿀수있다는데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소한것으로 상처받습니다만, 역시나 사소한것들로도 위로받습니다. 삶의 낙이란 그런면에서 중요합니다.
요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듣습니다. 저는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말을 낭만적이라는 이유로 좋아합니다만, 그게 당장 오늘이나 내일은 아니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사람입니다. 일단 좀 오래살고볼일이라는 말이 그저 그런 관용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합니다.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알베르카뮈의 시지프스신화에 대한 에세이에서 아주 유명한 문장입니다. 시지프스는 산위로 바위를 굴려올리는 형벌을 받은 인간입니다만, 영원토록 반복되는 일상을 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는 카뮈의 해석이 새롭습니다. 저 역시도 시지프스가 무한의 굴레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삶의재미 하나정도는 가지고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삶의 재미를 찾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노력중입니다. 인생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불꽃놀이가 생애 마지막 그 날에 터지든 안터지든 상관없을거같습니다. 재미를 찾은 인생에서 마지막에 불꽃이 한두번 더 터지는지 안터지는지 알게뭡니까.
그러기 쉽지 않다는걸 알지만,
행복했으면합니다. 억지스러운 소망같아도 일단은 그리 말합니다. 이 글을 읽는분들도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한 가지의 슬픔과 불행은 반드시 내일의 행복 하나를 적립해줍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살고자 이런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