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첫징조. 그리고 전쟁.
전쟁과 인류.
과학에 근거한 지구의 나이는 46억년 정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의 등장이라고 할만한 시기는 약 5백만년 전이라고 하네요. 그간 수많은 생명체들이 지구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졌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지구의 주인은 바뀌어 왔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공룡처럼 덩치가 크고 파괴력을 가졌던 괴수들도 있었고, 매머드같은 대형 동물들, 쥐나 바퀴처럼 압도적인 숫자와 생존력을 지닌 것들이 지구라는 별에는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있습니다.
인간 하나하나는 어찌보면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한 개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호랑이나 사자와같은 전투력도없고, 코끼리같은 힘과 덩치도, 표범처럼 강인한 재빠름도, 바퀴벌레같은 극한의 생존력도 없었으니까요. 이 지구라는 행성에 비교적 늦게 등장한 인류가 저런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문명을 쌓아올린것은 그러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수없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이런 대단한 문명을 쌓아올리고 번성하며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게 되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사실 아주 간단할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지능. 타 개체와는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인 지능의 활용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한것이다라는 단언이 그리 오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인류문명번성의 이유라는 질문에 조금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인 대답을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가렛미드라는 저명한 인류학자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분의 강연 도중 어떤학생이
'우리 인류문명번성의 첫 징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합니다. 이때 마가렛미드의 답변이 후대에 회자될만큼 인상적입니다. 석기시대의 날도끼나, 인류초기 각종 사냥도구, 의식용칼 이런것들이 아니라 '부러졌다가 치유된 대퇴부 뼈'라고 마가렛미드는 답하였다고합니다.
그 이유에 대한 마가렛미드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대퇴골이 한번 부러지면 그 회복에 최소 6주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다른 동물들에게 이 정도의 부상은 죽음을 선고하는것과 다름이 없죠. 천적으로부터 도망칠수 없고 먹이를 먹을수도없으니 동물들의 세계에서 이런 부상은 결국 개체가 도태되어 죽음이라는 필연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먼 조상들은 이 대퇴골이 부러진 동료를 내버려두지 않고 치료가 될 때까지 보살폈습니다. 대신 먹이를 구해다주고 보금자리를 옮길때 여럿이 함께하며 따로 시간을 내어 부러진뼈가 아물때까지 안전한곳에서 회복될때까지 도왔죠. 부러졌다가 회복된 대퇴골은 그러니 누군가 다친 동료를 버리지않고 그를 위해 헌신했다는 증거이며, 이 사려깊은 도움과 마음이 우리 인류문명의 첫 징조이자 시작이라는것이 마가렛의 답변이었습니다.
인류애라는 표현이 가끔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것을 봅니다. 사실 요즘같은 시대에 같은 인류니까, 같은 사람이니까 돕고살아야한다는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더 그럴듯해진 시대에 '부러졌던 대퇴골이 치료된흔적'이라는 말은 지나가버린 낭만과도 같은 실체없는것일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살아야한다'라는 말을 마음속깊은곳에 지니고 살고있으니 우리인류문명이 아직 무너지지않고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인류의 또 다른 면, 가끔씩 올라오는 분쟁과 전쟁지역의 무자비한 영상들은 인간의 악의와 잔혹함 역시 그 끝이 없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아 우리를 서글프게만듭니다. 전쟁국들의 복잡한 역사와 각자 메꿀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골이 있다는것을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그렇다해서 그들이 벌이는 행위에 대한 마음으로의 이해는 결코 쉽지 않네요. 죽은 사람의 시체에 침을 뱉고, 피범벅 포로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면서 조롱하는 영상들을 보다보니 어쩌면 '인류문명종말의 징조'라는것은 이런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인류가 멸종하고 한참 후대의 새로운 생명체가 인류라는 종족의 역사를 되짚는다면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요.
'사피엔스, 그들 문명종말의 징조는 이런 영상들 속에 남아있다'라구요.
부러졌던 대퇴골이 치료된 흔적에서 시작된 어떠한 징조가 사소하고 새삼스러운 시대일수도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작금의 영상 시대에 담겨진 일부 인간들의 악의와 잔혹함은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