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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본 글 중 슬펐던 글 하나

by 강다로

얼마전 엄마가 없던 친구이야기를 기억을 뒤집어가며 썼었습니다. 쓰면서도 여러생각이 교차했었는데 댓글들을 보니 또 감회가 깊어지더군요.

나를 아는사람 한 명 없는 이곳에 개인적인 기억의 편린을 풀어놓는다는게 무슨의미를 가지는지는 쓰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친구는 아마 잘 살고있을것같다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잊혀진 기억을 끄집어냈던건 이 짤에 나온 글을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 직접 물어본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근데 언젠가 자기랑 돈까스 먹은 날 도망갔다고 웃으며 얘기했던 기억 하나가 있네요. 그 날이 아마도 초딩 저학년때였을겁니다. 제가 초3때 그 친구를 처음 만났고 그때도 그 친구는 어머니가 안 계셨었으니까요. 저 짤 속 글쓴이의 이야기와 비슷한 과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내내 단 한번도 우는걸 못봤던 친구. 같은 학년 같은 나이임에도 키와 덩치는 서너살은 더 많아보이던. 그리 굳세던 놈이 21살 그 어느 한날 대 낮에 그리 슬피우는 모습이란게 참.. 뭐랄까. 서글펐습니다. 위로 한마디 못했냐 타박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맞습니다. 근데 당시엔 정말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살다보면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 몇개씩 생기기 마련이죠. 마치 그 동안 간신히 견디던 거대한 댐이 균열 하나로 다 무너져내려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전에 썼듯이 고딩형들한테 맞고 있는 친구를 위해 주먹도 휘두를만큼 용감하던 녀석이 세상이 다 무너진 듯한 얼굴로 우는 모습이 그랬어요.

저는 그 모습을 차마 볼수가 없었습니다. 왠지 보면 안 될것 같았네요. 그게 그 친구에게 할수있는 예의라고 당시에 생각했었습니다.

왜 그리 너희 어머니는 모질어지셨을까. 아니 원래 모질었으니 널 떠난걸까. 떠나고나니까 모질어지신걸까. 그 모질어진 감정에 모정이란 이름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다만, 그 모진 틈새가 너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너는 항상 도망간 엄마 얘기할때 웃었던것 같은데, 그리고 원망도 섞였던것 같은데. 그럼에도 언젠가 분명 필히 경험해보았을 어미에 대한 그리움이란 이겨낼 수가 없었던것이었음을 그 눈물로 알았습니다.
변명같지만, 저는 그래서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쏟아지는 네 눈물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이 모두 다 섞여 쓸려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나마 고르고 고르던 말 중 결국 전하지 못한 말입니다.

돌아가는 기차역까지 같이 갔었는데 그때 나눈 대화도 거의 없었던것 같습니다. 기억이 안나네요. 어쩌면 그 친구는 어머니를 뵈러가는 여정에 친구를 잘못 선택했던게 아닌가. 나 말고 좀 더 똑똑한 놈을 데려갔으면 상황이 낫지않았을라나. 이래서 사람은 친구를 잘만나야한다.
이것 역시 지나니까 드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그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좀 알고싶어서 여기저기 연락은 좀 해봤습니다. 드라마같이 멋진 재회 후기를 쓰면 참 좋았겠지만, 아직 이렇다할 소식은 없네요. 저부터가 일단 고향에서 멀어진터라 연락되는 그 시절 인연이 거의없고..

그 친구는 다른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초중동창들과도 거의 연이 끊겼던것. 이미 고등학교때 다른 지역으로 갔다더라는 이야기 하나는 건너건너 전해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일단은 좋은 인생이 그 친구와 함께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1살시절에도 낭만 비슷한 감성하나 없던 제가 서른후반이 되었다해서 뭐가 더 생겼겠습니까.

그래도 만약 연락이 닿게된다면 할말은 있어야 할것같아서 정해둔 첫마디는 있습니다.

넌 잘 살고있을 줄 알았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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