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할아버지 시골댁에서 나올때 나이가 9살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자리를 못잡아 6살부터 9살까지 시골에서 자란거죠. 엄마를 보지못한다는 서글픔은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과 여기저기 온 산을 쏘다닌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는 그러니 초등학교3학년때 처음 마주하게 된겁니다. 학교규모도 작았고 거기 부모님들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신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아이들이 다들 착해서 잘 놀았더랬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 친구와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는데, 거기도 대다수가 착한 학생들이었습니다. 다만 아직 어린 나이이다 보니 분별없는 말을 함부로 던지는 경우는 있었죠. 일진이니 이진이니 그런 개념자체도 모르던 시골 중학교에서 싸움은 그러니 흔한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엄마 없는 놈이라는 말을 던졌던 친구는 그날 코가 부러졌습니다. 코가 부러진친구도 평소 악의가 있던놈은 아니었어요. 평소에 친구가 자신이 어머님이 안계시다는 사실을 부끄럽지않게 여기듯 행동했었고, 가끔은 그걸로 자학하는식의 농담도 했었거든요.
지나보면 그 농담과 당당함에 서글픔이 없었을리 없었습니다. 체격도 또래에 비해 크고 주먹도 매섭던 그 친구가 가진 아픔은 그런것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우리엄마 도망갔다는 말을 하고 낄낄거리던 그 웃음의 뒷면을 모두 헤아리기엔 우리가 아직 어렸던겁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그 친구에게 엄마없어서 어떡하냐식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 날 다들 어느정도 알게된것이죠. 저 싸움 잘하고 매서운 친구에게도 아픔이 존재한다는것 말입니다.
제가 중학교3학년때 오락실에 갔다가 고등학교 형들한테 잡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억울한것이 처음 오락실이라고 간건데 하필 그날 잡힌거죠. 가진거 털어보라고 하던 염색한 형한테 돈 없다고 거짓말하다 도망쳤습니다.
그러다 잡혔죠. 세명정도한테 뒤지게 맞았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서 기세좋게 고딩형들을 향해 달려든것 까지는 좋았습니다마는..
결국 같이 맞았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나이 차이는 불과 두세살뿐이지만, 그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것을 아는분들은 아실겁니다.
그렇게 개처럼 처맞고 저는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돈도 뺏기고 얼굴이 다 터질정도로 맞았으니 중3짜리가 울 이유로는 충분했죠. 근데 그 친구는 울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저보다 더 맞았는데도요. 저보고 그러게 도망을 왜치냐? 잡히면 더 맞는데라고 힐난하더군요. 저도 그말에 욱해서 지는 이기지도 못할거 왜 개기다 쳐맞았냐 대꾸했죠.
별 대답 안하던 그 친구는 아직도 코피가 줄줄 흐르는 코를 풀더니 한마디했습니다. 그래도 남자색기가 주먹은 뻗어봐야지. 그게 남자아니냐
그 친구에 대한 인상은 딱 그 때 그 장면과 그 표정으로 한참을 남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저는 인문계로, 그 친구는 실업계로 가면서 자연히 연락은 끊어졌습니다. 시절인연이라고 하죠. 그렇게 같이 두들겨 맞은 기억하나 공유한채로 수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대학교2학년. 제가 군입대를 바로 앞둔 때였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는데 그 친구였네요. 반갑기도 했지만, 사실 그간 격조했던터라 어색한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근데 그 친구가 대뜸 저보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얼굴 한번 볼수있냐더군요.
군대가기 직전이라 저도 심란한 와중에 뭐 어쩔수있겠나 싶어서 그래 얼굴한번 보자했더니 그 친구가 다음날 제가 자취하는 대학 주변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날 밤까지 옛날 얘기하면서 같이 낄낄대다보니 우리 사이 수년의 멈췄던 시간이 다시 맞춰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연이라는건 그러니 번호 한번 딸깍에 달린게 아닌가.. 그런 뻘생각을 하는 와중. 그 친구가 저에게 부탁하나만 하자고 하더군요.
뭐냐고 물었더니, 사실 친어머니가 제가 살고있는 곳 근처에 계신다는걸 알게되었다는겁니다. 그때 우리나이 21살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 친구가 그동안 어머니를 그리워 해왔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굳센얼굴 뒤에 감춰진 그리움을 이제 해소할수도 있겠구나라는 저의 짧은 생각으로,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근데 그 친구의 표정이 이상하더군요. 어머니를 보게된다는 설렘이 아니라 어딘가... 지금 돌아보면 그 표정은 두려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중학교3학년때 염색한 형들한테 무기력하게 맞을때 그 표정. 그 표정이었던거죠.
저를 찾아온 이유를 그때 알았습니다. 친어머니를 보는데 같이 가달라하더군요. 저는 별생각없이 그래, 그러마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친구와 함께 그 장소로 가게됩니다.
모자상봉의 순간을 곁에서 보진 못했습니다. 저는 바깥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그 친구 혼자 들어간거죠. 솔직히 제가 거기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제 기억에 그 친구는 덩치 큰 형들한테도 덤벼들던 용맹이 있던 놈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그 뒷모습이 뭐랄까... 집잃은 강아지 같았습니다. 저보다 덩치가 더 좋았는데 말이죠.
한 30분정도였을겁니다. 생각보다 긴시간도 아닌데 저 멀리서 친구가 비척거리며 걸어왔습니다. 친구는 울고 있었습니다. 21살. 이미 단단해진 골격과 굳센인상의 사내가 된 놈이 중학교때도 못봤던 얼굴로말이죠.
벤치까지와서 한참을 울던 친구가 한마디하더군요. 엄마가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하더라.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고.
거기서 참 위로가 될만한 그럴듯하고 멋드러진 표현이나 문구가 있어 그 친구를 위로할 수 있었더라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저는 바보처럼 정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울만큼 울고 팔소매로 눈물을 다 닦아낸 그 친구가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고맙다라고 할때까지, 전 정말 한마디도 그 친구에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내려갔습니다. 그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군입대를 했고 이후 연락은 다시 끊겨 저에게 남은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지금 쓴 것이 마지막입니다. 서글프게 울면서 걸어오던 모습.
그 친구를 찾아서 연락을 해볼까생각도했었는데, 여전히 마음이 반반입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저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보여준것 같단 생각을 했을수도 있지않을까.. 그런 생각이 저를 주저하게 합니다. 평생 가릴 수 있는 내 상처를 어쩌다 본 사람이 있다면 생각이 복잡할것 같거든요. 아직은 무소식이니 희소식이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잘 이겨내고 잘 살고 있을거라고 여기고는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단단한놈이었으니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강해지지않았을까란 생각.
소년만화속 주인공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