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5센티미터라는 애니를 처음엔 뜻하지 않게 봤었습니다. 저는 이 애니를 두번 봤는데요. 한 번은 군입대 직전, 그리고 또 한번은 서른 직후였습니다.
군입대전 저의 하루일과는 무척 간단했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빌려서 읽고, 그 책들을 다 읽으면 재밌어보이는 영화를 봤습니다.
당시의 저는 나름 이것저것 보려고 노력했노라. 스스로는 생각합니다.
초속5센티미터라는 애니를 보게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노트북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보다가 슬슬 잠드는걸 저는 좋아했었는데, 당시 알고 지내던 여자선배가 저거 한 번 보라고 추천해줬습니다. 뭔가 전혀 제취향이 아닐것 같은 애니임이 분명했지만 한 번 보기로했죠
1편의 제목이 앵화초였던가요. 벚꽃을 앵화초라고 부르던가. 국방부의 부름을 앞둔 청년이 보기엔 좀 지루했습니다. 무엇보다 로맨스 쪽에 큰 감흥이 없는 저에겐 그저 선배가 한번보라고 하니까 보는거였을 뿐. 1편은 기차역에서 중딩애들이 헤어지고 2편은 로켓이 날아가고 3편에선 횡단보도 사이에서 암울한 재회와 헤어짐이 이루어지고.
감독이 악취미를 가지고 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당시의 저는 중딩때 무협소설 '표류공주'를 읽고 이른바 주화입마에 좀 빠져있던 상태였기도 해서 새드엔딩을 싫어했습니다.
그게 초속5센티 어쩌고에 대한 제 첫번째 기억입니다.
서른을 갓 지난 시절 이 애니를 다시 본 것은 순전히 제가 원해서였습니다. 실연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연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실연을 말합니다. 저는 이상하게 정말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정도로 멘탈에 타격이 오면 눈물이 나질 않더군요. 분명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태임에도 자각이 좀 느리다고 해야할까요. 저는 그런상황이 오면 영혼이 지혼자 몸을 놔두고 빠져나가서 나를 제3자처럼 바라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상처를 많이 준 것 같아 미안하다던 여자친구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제 영혼은 그렇게 나를 제3자로 바라보고자 빠져나갑니다. 눈물은 물리적으로 흐른다지만 정신적동력이 상실된 상태에선 눈물조차 흐르지 않음을.
저는 좀 늦게 깨달았던것 같네요.
저는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감수성이 넘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끔은 무감정해보이고 무뚝뚝한 사람의 전형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다만 그런 인간도 눈물을 흘리고 싶은 날이 있더군요. 술을 못하고 나오지 않는 눈물을 스스로 뽑아내는 능력이 없는 제가 골라든 게 저 초속5cm였습니다.
앵화초라는 자막이 새롭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다만 좀 더 자세히 보게되긴했죠. 전학온 친구랑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친해져 연애하는 사이가 된다. 좋은 얘깁니다만 나이 서른 먹은 제가 중딩들 연애사에 공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기차에서의 헤어짐 이후 2편에 들어서야 이 영화가 마음속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이 놈은 어쩌다가 그 긴생머리 여자애를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단발머리 여자애. 굳이 멋대가리 없는 남주따위 아니어도 충분히 자기좋다는 남자들 골라만날법한데 그 주위를 뱅뱅 맴돌죠.
주위를 맴돌아본 적있던 저 역시 그제야 단발머리 여자애의 심경을 이해합니다. 보내지도 않는 문자를 보내는척 분위기 잡는 남자주인공의 행태란. 이 세상의 짝사랑은 저렇게 보내지도 못하는 문자내역과 같은 것인데, 그 꼴값을 보고도 주위를 떠도는 단발친구를 보고 웃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럴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뜬금없이 로켓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울기 시작하는 단발친구의 마음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목 초속5cm. 시종일관 그 속도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고했던가요. 로켓이 그 속도로 날아갈리는 없죠. 대기권을 뚫기위해선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함을 알고있습니다. 벚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로켓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단발머리여자애는 멋대가리없는 남자놈의 속력과 방향이 저 로켓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저 친구를 좋아하지만 현격한 방향과 속력의 차이. 그래서 이루어지지 못하겠다는 낙심이 그 친구를 울게 만들지 않았는가
우스운 일입다만 저는 그 시점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울어봤는지 기억이 안날정도로 눈물이 부족하던 저에게 눈물은 그렇게 흘렀습니다. 오랜가뭄 뒤 그간 못내린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요. 30넘은 놈이 질질 눈물콧물 쏟고있는 모습을 누가 보지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3편은.. 성인이 된 주인공과 잃어버렸던 히로인이 다시 등장합니다. 긴생머리 여자의 손에 다른 남자와의 미래를 약속하는 반지가 걸려있는 것에 저는 상심했더랬죠. 그리고 내내 머저리마냥 바닥만보고 걷는 것 같은 주인공의 무기력함까지.
아마 애니상 주인공과 히로인이 헤어진 시간은 길어야 20분이 채 되지 않을것인데. 20분이 20년의 상실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20분동안 긴생머리 여자애를 잃어버린 주인공을 탓했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저에 대한 원망같은 것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연애하는 기간동안 나도 잃어버린게 있었고 그러다 되돌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겹쳤거든요.
그러니 애니 마지막부분을 통째로 잡아먹은 원모어타임 원모어찬스라는 곡에서부터는 화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꼴사나운 모습으로 눈물만 질질 짜면서 작은 모니터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되어서야... 가출했던 저의 어떤 정신상태가 되돌아와있음을 알았습니다. 실연의 고통이 나를 얼마나 맹렬히 괴롭히고있는지 드디어 제대로 된 정신과 감각으로 마주하게 된것이죠
결국 앓고나야 지나가는것들이 있다는 말보다는 모르고 지나가는게 낫다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날 약 1시간짜리 애니를 보면서 질질 짰던 저는 주인공이 어설프게나마 웃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애니에 과몰입을 그렇게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저는 분명 그 날 다시 깨달았던것 같습니다
젊은날의 초상이라고하기엔 아직 그 기억이 10년이 채 안되었고, 그럴만큼 거창한 추억도 아니지만
초속5cm는 그래서 저에게 다소 양면적인 감정으로 남아있습니다.
새드엔딩을 싫어하는 그 시절의 감상은 여전하면서도, 그날의 시간이 저에겐 나름의 감정 해소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