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어쩌면 서글픈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테두리라고 생각하는 가정 안에 증오하는 존재가 있다면 더더욱.
얼마전 고향으로 벌초를 다녀오던차에 고향후배를 만났습니다. 후배라기엔 나이차이도 좀 나고 그 친구는 쭉 그 곳에서만 살았기에 오래 연락이 끊겼었습니다
7살이 어린 친구. 제가 살던 동네는 잘살지 못하던 곳이었네요. 그 집과는 저희어머니가 왕래를 좀 하셨습니다. 저희는 아들만 둘. 거기는 딸만 셋.
제 기억에 그집 아주머니는 참 다정한 분이셨는데.. 월셋방 사는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끼셨던것인지 오며가며 잘해주셨죠
가난한 동네의 밤은 좀 우울한 부분이 있습니다. 가건물에 세들어 살던 그 친구네 집에선 며칠에 한번 정도 큰소리가 났더랬죠. 지독한 술주정뱅이었던 아저씨. 저녁 9시쯤부터 터지는 고함소리는 종내 사람 살갗을 때리는 소리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주먹이나 손바닥이 사람피부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폭력적이라는것을 전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3년내내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만, 그 친구네 사정은 모를수가 없었죠. 그릇깨지는소리와 처절하게 울부짖는 아주머니, 어린 세딸의 흐느끼는 소리는 그러니까 저와 동생에게 거의 온전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2주에 한번 기숙사에서 돌아왔을 땐, 제 동생이 그 집안 소란을 가끔 말렸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랑 동생은 1살차이가 납니다. 동생은 어릴때부터 운동을 잘했고 싸움에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생도 술먹고 눈이 돌아버린 아저씨의 폭력에 대응할만한게 없었다고합니다. 무엇보다 술에 취하면 다른 자아가 나오는것 같은 상대를 고등학생이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느 주말밤에 철썩거리는 소리가 도저히 듣기 힘들어 제가 그 집을 찾아갔을땐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무릎꿇고있던 아주머니. 세 딸. 그러니까 저보다 한참어린 그 친구들은 문을 부여잡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식기와 핏자국들보다
이런 모습을 옆집 학생에게 보여지는게 면구스러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과.. 자기들보단 훨씬 덩치가 큰 옆집오빠 둘이 찾아와줘 안심하는듯한 그 표정이 저에겐 더 견딜수 없는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자신에게 할당된 그날의 화를 다 해소한것처럼 대자로 누워 자고있었네요
저나 동생이 뭘 더 하기엔 종료된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문을 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뿐이었습니다. 동생이 그러더군요. 사나흘에 한번은 저런다고.
그날의 처참한 광경은 지금도 또렷합니다만, 남의집 일에대해 고작 고딩둘이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는일이었죠. 부모님도 거기가서 말리고 그랬다지만 술먹으면 그모양이 되는 사람이 달라지는일은 없었습니다
수능이 끝나는날 저는 기숙사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목도했던 처참한 광경은 그시점으로부터 1년여정도 지났지만 눈에 각인된 것처럼 남아 저를 괴롭혔습니다.
수능이 끝났다고 떡이랑 엿가락 같은걸 저희집에 가져온, 7살 어린 그 집 맏딸을 보면서 요샌 좀 어떻냐고 물었던것 같습니다. 말도하기전에 눈시울부터 붉어지는 그 초딩친구를 보다보니 뭐랄까..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안타깝다. 고작 5학년생과 그 밑으로 줄줄이 딸린 작은 체구의 아이들을 때릴만큼 그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화가났는가
수능이 끝나고 한겨울 혹한이 저희집 얇디얇은 벽을 부술것처럼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결국 사건이 터졌습니다.
와장창하는 소리. 밤10시경이었던것 같네요. 저는 동생보고 그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어떤 정의감따위로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전 용감한 사람도 아니고 술먹고 눈이 돌아버린 중년아저씨에 대응할만큼 싸움을 잘하지도 못했거든요
다만 수능끝나고 떡이랑 엿을 바구니에 담아가지고 왔던 그 5학년짜리의 처량한 눈이 참.. 받아먹은 떡과 엿에 대한 값을 오늘 해야겠다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한창 뭐가 대차게 부서지는 소리와 흐느끼는 아이들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문을 열어제쳤습니다. 깨진술병으로 싱크대를 두드려서 손에 피가 흥건한 아저씨의 모습이 들어오더군요. 그때 제가 뭐라고했는지 기억을 못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가 알려줬네요. 엥간히 좀 하라고 했다고.
아저씨는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혀꼬인 목소리로 별별욕을 늘어놓다가 저와 동생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저는 당황했죠. 그리고 그만 주먹으로 그 아저씨를 두들겨 패고 말았습니다. 술에 취한 아저씨는 물먹은 솜마냥 하찮은 제 주먹질에도 몸을 길게 뻗으며 눕더군요. 오히려 동생이 놀래서 형 그만하라고 말렸더랬죠
이후는 싱거운 일이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나중에 저희집에 찾아왔을때는 저도 상당히 쫄았었는데.. 별말은 안하시더군요. 근데 좀 쭈뼛쭈뼛하는 모습이었던것 같습니다
그 사건 후 한달쯤 뒤 저희집은 다른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그 집을 한참 못보게됐습니다
벌초를 하게되면서 그 동네를 다시 드나들다가 그집 딸들을 마주하게 된것은 그러니까 우연이겠습니다.
그 친구와 둘째 동생이 그러더군요. 그래도 그 날 오빠들이 그 인간 두들겨패놔서 이후엔 좀 덜했다고. 자기들은 그게 고마웠다고 합니다. 내가 거기서 뭘 어떻게했는지를 저나 동생보다 더 세밀하게 기억하고있는것을 보면서..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 집안에 아들하나라도 있었으면 조금 달랐을까. 남자들은 신체적으로나마 상대를 극복하게되면 트라우마가 많이 해소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한 첫째딸은 여전히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한답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들겨 팬 그 날 이후 보이던 비겁함까지 겹쳐져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감정마저 날아가버렸다고..
아버지가 그 모양이다보니 남자를 보는 눈에 어떤 최하점과 최고점이 없어 고생도 많이 했다더군요
이런저런 얘기에 제가 무슨 말을 더하고 빼고 그럴순없었습니다. 단지 그런말만했네요
결혼했으니 너만의 테두리를 잘 만들면 되지않겠냐
아버지를 증오하는 그 친구들 귀에 어떻게 들렸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그 친구들에게 그 날의 기억이 그렇게 고마웠다는걸 알았더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리고 좀 더 친근하게 행동해줄걸.
지나고나니 그런 사소한것에 대한 아쉬움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