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같은 것이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 (사양)-
사양이라는 단어는 저녁때의 지는 해라는 뜻을 가집니다. 잘 쓰지 않는 단어라 주로 석양이나 낙조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겁니다.
제가 사양이라는 단어에 가진 뜻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게 된 것이 바로 다자이오사무의 '사양'이라는 소설에서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인간실격이 아닐까합니다만, 이 사양이란 소설도 꽤 유명하죠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좀 거북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라 평하던 분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세계대전 일으킨 놈들이 전쟁에서 졌다고 세상 불쌍한 나라가 된것인양 피해자코스프레하는 것이 꼴불견이다... 뭐 그런 후기를 들어본적이 있네요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다자이오사무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도 개인적으로는 별로라 생각하구요.
다자이오사무는 어둡고 비참한 삶을 펜촉 끝에 지나칠정도로 잘 녹여내어 작품을 보고난 뒤의 꺼림칙함때문에 좋아하지않습니다.
그런것 있지않습니까. 사진을 찍었는데 원래 모습보다 지나치게 잘나오는 경우. 이건 내모습이 아닌데라는 감정에서 오는 잠깐의 서글픔같은 것 말입니다.
다자이오사무의 글은 딱 그 정반대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펜촉으로 그려진 일상이 너무 혹독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저정도였나..?
하루키의 경우는...
작품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동굴같은곳 체험하러 들어가보면 축축하면서도 차가운기운이 우리피부의 소름을 만들어냅니다. 가끔씩 떨어지는 물소리가 듣기 좋긴한데 어쩌다 습기찬 구석구석마다 풍겨지는 이끼비린내와 곰팡내가 뒤섞인 것같은 오묘한 향내가 가져다주는 꿉꿉한기분.
전 하루키 글을 읽다보면 그 축축하게 잡히는 발 아래느낌과 꿉꿉함이 영 별로더군요. 그래서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니 문학적소양은 그러니 거기서 끝인거다라고 한다면 할말은 딱히 없습니다. 소양이랄게 없는것도 맞는말이니까요.
다만 그들의 소설 속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문장들은 가끔 메모해놓고 다시볼때가 있습니다.
오늘 메모장을 들추던 중 발견한 문구가 바로 저것입니다.
다자이오사무는 진하디진한 삶의 결핍과 비정과 슬픔을 펜촉으로 녹이다 못해 자기자신까지 결국 녹여버린 작가입니다. 사양소설 속 마지막에선 그래도 희망을 찾아 나서야한다는 메세지를 줘놓고 정작 다자이 오사무는 1년뒤쯤 자살하고말죠
과거엔 저도 작가의 일생에 작품을 포개어보려는 생각도 해봤었는데, 지금은 마냥 그렇게 보진 않습니다.
작가가 만들어 낸 작품은 결국 읽는 사람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사람의 얼굴이 하나가 아니듯이, 작가의 생각이 녹아난 글들도 여러 빛깔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제 단견으로는 독서든 그림이든 그렇게 사람들 마음속에 남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행복에 대한 다자이오사무의 저 글귀가 사무칠때가 있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사금을 발견할 때가 간간히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니 이 글의 결론은 뭐.
가끔씩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으로 우리는 결국 살고있지않는가.
그 정도겠네요. 끄적여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