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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일체유심조?

by 강다로

영국신문사에서 이런 공모를 내건적이 있다고합니다

'북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가는 방법을 답하시오'

비행기를 탄다거나 기차와 택시를 이용한다거나 하는 답들이 쏟아졌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줄이는 방법은 없으니 가장 빨리가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저들 중 하나가 답이었을겁니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1등으로 뽑은 답변은 이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

저같이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으니
가타부타 설명을 곁들일 필요는 없을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교의 가장 널리 알려진 가르침 중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사실 좀 더 깊은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일갈하는 분들이 존재하겠습니다만. 우리는 구도자가 아니니 취할 수 있는 부분만 취사선택해보기로 합니다.

어쨌든 저 마음먹기에 달렸다를 진실로 체득하고 체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겁니다. 우리는 다른사람의 마음 바꾸기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진정 인생에서 고달픈 일을 마주했을 땐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될 때라는 것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사람 안 바뀐다는 속설은 그러니 누군가를 꼭 힐난하기위해 생겨난 말이 아니라 자조적인 면을 가지고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저만의 짐작입니다.

그런고로 일체유심조의 완전한 깨달음까진 고된 길입니다. 그래도 그 이해에 약간의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공모전의 답이 그렇고, 맹자가 말했던 불원천리란 단어가 그것이죠.

불원천리란 천리길도 멀다 느끼지않는다라는 뜻인데 반기는 이나 함께하는 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리가 무슨 문제가 될까요. 멀다고 느끼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에 달린 것이다. 뭐 그렇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죽음을 생각하던 소설 속 주인공을 알고 계실겁니다. 그 주인공은 결국 마지막 잎새만큼은 남아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다잡죠.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이어야 하니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만 치부하진 않겠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마음가짐에 따라 삶의 동력이 사라지기도, 생겨나기도 하는 것을 경험해봤습니다.

하다못해 이성을 대할 때 마음가짐의 차이로 인한 결과물을 직접 눈으로 마주해본 분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네요.

저는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언젠가 유토피아같은 세상이 도래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마음이 편해지고자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 정도는 개인에게 괜찮지않나싶습니다.

내가 좋은쪽으로만 마음 먹는다고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단지 굳이 나를 갉아먹는 마음으로 세상을 비춰봐서는 돌아오는 실익이 없다는 것 정도를 경험해 본 나이에 도달했을 뿐입니다.

사회의 제도와 상식을 어긋나지 않는선에서 나 스스로 하는 자기합리화와 자기위안은 그래서 개인에게 도움이된다고 여깁니다.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고들 말하지만, 정말 못견딜 것 같다면 도망쳐보는것도 뭐 어떻습니까. 하이에나 무리에 쫓기는 사슴들이 꼭 낙원을 찾아 도망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도망친 뒤 당장 숨이 좀 트이고 나면 안보이던 것도 보이게 되는것이 우리네 삶이 지닌 얄궂음이라는 감상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대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려있으니 수행하고 정진하라는 선대고승들의 말은 수천년간 나이를 먹지않고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고있지만.

저같이 차안(此岸)에서 구르는 속인들에겐 여전히 겉핥기도 어려운 화두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꼭 피안의 경지나 해탈의 경지까지 도달할 필요는 없지않을까. 칠정오욕의 속세. 그리고 운명의 수레바퀴인지 뭔지 그 안에서 적당히 구르다 삶이 끝나는 것도 전 나쁘지 않다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런 가르침은 이 현세를 구르는 기간동안 틀림없이 마주할 불퉁한 돌에 덜 상처받길 바라는 마음가짐의 일환과 방편 그 어디쯤.

그 정도로만 여겨도 충분하지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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