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 멈추지 않는 윤회의 수레바퀴

7. 까르마 Karma 業


그들이 생각하기를, 윤회란 살아생전, 사회에서 행한 행위의 결과라고 하니, 얼핏 보아서는 내세 지향의 세계관이겠거니, 하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현실 중시의 세계관이라고 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라고 할 겁니다. 다음 생에서 콩을 수확하고 싶으면 이생에서 콩을 심어야 할 테고, 팥을 얻고 싶으면 팥을 심어야 하니, 사람들은 브라만 신학자들이 규정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콩이나 팥을 심는 일, 즉 사회에서 하는 행위를 까르마karma라 하고 한자어로 업(業)이라 합니다. 그러니 까르마란, 윤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지요. 선행이 쌓였는지, 악행이 쌓였는지,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생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선업을 쌓으면, 천상의 존재나 신으로 태어나거나, 브라만 카스트나 부잣집 자녀나 왕으로 태어나고, 악업을 쌓으면 지옥에 떨어지거나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이런 힌두교의 까르마 담론은 불교에 와서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집니다. 불교에서는 다음 생을 6도라 정리하지요. 6도는 천도(天道), 인도(人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입니다. 불교가 사회 행위를 포기하고 사회 바깥으로 나가, 열반을 추구하라는 붓다의 가르침은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대부분이 선업을 쌓아 다음에 더 좋은 생으로 태어나기를 추구하는 윤회 추구의 대승불교로 자리 잡았을 때 이런 개념이 더욱 정교화되지요.


그렇다면, 이생의 사회에서 어떤 행위를 해야 천상이나 인간계로 아니 인간계에서 브라만이나 왕이나 부자로 태어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뒤따를 겁니다. 그것을 정하는 게 힌두교의 율법이고 이 율법을 그들은 다르마 dharma라고 부릅니다. 이 다르마를 모아놓은 법전은 시대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바뀌지만, 변화하는 세계에서 카스트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러 법전 가운데 가장 으뜸인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이, 함무라비 법전과 모세 5경과 함께 세계 고대 3대 법전이라 부르는 [마누법전]입니다. 이 법전이 규정하는 여러 가지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첫 번째 선업을 쌓는 일이고, 다음은 신을 잘 모시고 따르는 것이라고 그들은 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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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에서 이에 관한 신화를 좀 들어보겠습니다. 옛날 옛적에 어떤 브라만이 한 사람 살았는데, 그는 법에서 하지 말라는 여러 죄에 빠져 평생을 악행만 일삼고 살았는데, 죽는 순간 실수로 자기 아들을 가리켜 부르면서, 힌두교 최고의 신인 비슈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한마디는 비슈누의 사신을 불러오게 하였고, 비슈누의 사신이 염라대왕의 사신들에게 말해, 그를 지옥에서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켜켜이 쌓인 업장을 깨끗이 정리하고 계속해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신의 은혜를 받았다고 가르친 거지요. 그는 그 이름 한 마디로 여생을 연장했고, 이후 여생을 오로지 신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았고, 이후 궁극적으로 해탈을 성취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신을 섬기는 것이 사회 제1의 선업인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법전이 규정하는 다양한 진실과 정의에 관한 율법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하리쉬짠드라 왕은 율법을 무조건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사방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신선(神仙) 한 사람이 그의 신실함을 시험합니다. 신선이 어느 날 왕의 꿈에 나타나, 엄청난 자금을 바쳐 대규모 제사를 지내겠느냐고 물었고, 왕은 두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답니다. 이후 그 신선이 실제로 나타나 엄청난 규모의 헌금을 요구하였는데, 왕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고를 비우고, 심지어 왕위도 버리고, 가족도 다 팔고, 결국, 화장장에서 시체 태우는 최하층민으로 전락했답니다. 어느 날 자기 아들이, 뱀에, 물려 죽었는데, 자기 아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니, 땔감 없이 화장해달라고, 통사정 한 것을 법도에 어긋난다고 거절했답니다. 그러자 그 신선이 나타나 모든 게 시험이었다며, 다 원상회복 시켜 주었고, 어떤 경우라도 흔들리지 않고 다르마(법)을 잘 지킨 선업으로 신이 나타나 천상으로 데리고 가는 최고의 보상을 받았답니다.


이런 이야기가 널리 널리 퍼지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겠습니까? 어떤 경우라도 율법을 준수하고, 신을 숭배하는 일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되겠지요. 그러면 사원이 곳곳에 세워지고, 사제들은 배불리 먹고, 재산을 축적하고, 권력을 확대하겠지요. 이런 사회를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과 봉건의 성격이 강한 사회겠지요. 하지만, 달리 보면, 사회가 도덕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그 도덕에서 일탈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가 불안하게 들끓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왕은 왕대로, 각 카스트는 그 카스트대로 주어진 도덕의 의무 속에서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겠지요.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불평등하고 봉건적인 사회임에는 분명하나, 그 보수성의 가치가 여전히 큰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이런 사회 문화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니, 현재의 인도 사회는 그런 성격이 여전히 강하지요.


13.1./250923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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