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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 May 14. 2024

12. Chebakia

인샬라 블루 목차

Prologue : Morocco

1. Real   2. Three Options  3. EMS

4. Morocco  5. Blue   6. Cold Fish

7. Burning Mountain 8. Breaks off Iceberg

9. Lily 10.  Flower. 11. Flower2 

12. Chebakia

Epilogue : Inshallah Blue



    "하산 또 그렇게 어지르면 어떻해!"


    그녀는 주방에서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오전 간식으로 줄 시나몬 맛에 모로코 특유의 샤프란 향이 감도는 달달한 갈색 과자 슈베키아 Chebakia 가 한가득 들어있는 큼직한 갈색 종이 봉지를 들어, 하얀 쟁반 위로 슈베키아를 수북히 쏟아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슈베키아를 담은 쟁반을 조심스럽게 들고 거실로 나오다 조금 전 함께 정리해 놓았던 레고 조각들을 다시 어린이집 거실 한 가운데에 쏟아놓고 놀고 있는 6살 짜리 남자아이 하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하산 옆에서 함께 레고를 어지럽히고 있던 5살짜리 두 여자아이 자밀라와 야스민은 그녀의 음성을 듣자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고 그녀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뒤로 했다. 무언가 반성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하산은 그녀의 호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들고 있는 하얀 쟁반에 담긴 달콤한 슈베키아를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가만히 서 있는 그녀의 엄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서서 자밀라와 야스민처럼 두 손을 뒤로 했다.


    그녀는 잠시 귀여운 아이들을 째려보다 이내 마음을 풀고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빙긋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쟁반을 들고 거실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어가, 거실 베란다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회색빛 가죽 소파 옆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 쟁반을 올려놓고는, 반성하는 표정과 함께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산, 자밀라, 야스민 세 아이들은 탄성을 내질르며 슈베키아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자 그녀는 검지를 세워 세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 하나씩 천천히~"


    새벽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30분을 걸어 아침 무렵에야 어린이집에 도착해 몇 시간 동안 여러가지 어린이집 일을 했던 그녀는 슈베키아를 양 손에 들고 먹고있는 세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는 잠시 회색 소파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고 잠시 거실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벽을 가득채운 샤시 창 밖으로 보이는 낮은 언덕 아래의 탕헤르 외각에 있는 시골 마을 아고르시의 풍경을 바라 보았다. 아고르시는 조용하고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한적한 그녀가 중학생 시절부터 자랐던 곳이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갈색 녹색 회색으로 보이는 그녀의 헤이즐 눈은 점심이 되어 하늘 중앙에 뜬 모로코의 해에 비쳐 녹색 빛을 띄고 있었다. 그녀는 녹색 빛 눈으로 잠시 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익숙한 아고르시 마을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삶이란 언제나 쉽지 않았고, 세계는 알 수 없는 뿌연 안개로 휩싸인 것 같아 보였다. 마치 세계는 ‘세상에는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란 없다’고 그녀에게 말하는 듯 언제나 그녀를 낙담시키곤 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20살이 넘어가는 무렵부터 언제나, 세상은 마치 무언가 찬란한 미래와 신나는 환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기대하게 만들며 그녀에게 찬란한 가능성들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듯 싶다가도, 그녀가 세계를 믿고 뛰어들려는 순간이 되면 마치 조롱하는듯 그녀를 깊이 배반하고 성급하게 그녀를 차단시키며 좌절시키려는 듯 짖궃게 행동했다.


    더구나 그러한 세상 속에서 남자들이란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남자들이란 모로코의 사내들처럼 앞뒤가 꽉 막힌 답답한 존재들이거나, 아니면 가볍거나 만날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존재이거나, 충분히 그녀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혼자 들끓다 혼자 지쳐 사라져 버리는, 저 먼 들판에 조용히 불었다 사라지는 바람처럼 허무한 존재들이었다.


    그녀는 남몰래 소녀처럼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 있었으나,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그녀를 위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히 오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차가운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꿈도 환상도 없는 냉혹한 현실 세계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해야 했고, 그녀는 점점 더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마음을 접고, 점점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세상은 왜 이토록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그러한 상념에 휩싸여…한숨을 쉬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손을 만지는 무언가 끈적하고 자그마한 것을 느끼며 허무한 생각들에서 빠져 나왔다.


    하산이었다. 하산이 슈베키아에 발라진 꿀로 끈적한 손으로 그녀의 차갑고 작은 왼손을 만지며 아직 그녀가 슈베키아를 한 조각도 먹지 않았다고 그녀에게 슈베키아 한 조각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하산의 자그마한 손에서 슈베키아 한 조각을 받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하산을 꼭 안아보았다. 하산의 끈적한 두 손이 새로산 그녀의 검은 희잡을 만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순간 만큼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산을 꼭 안고 마음으로 속삭이듯 짧은 축복의 기도를 외웠다.


    "신께서 너를 شجرة الخلود 영원의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네게 너 보다 약한 존재인 단 한 명의 여인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영혼의 힘을 주시기를. 너 만큼은 수 많은 바람과 같은 사람들과는 다른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5월의 모로코의 정오. 태양은 지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이집을 나와 푸른 덤불들 가운데로 난 흙길을 걸어 언덕을 조금 내려오면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희미한 모레 바람을 뒤로하고 서 있었다. 그녀는 정오부터의 2시간의 휴식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가까운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을 좀 내고 싶었다. 하산으로 인해 끈적해지고 꿀로 반짝거리는 검은색 희잡 대신 밝은 색의 예쁜 희잡도 하나 새로 사고 싶었고, 카페에서 가볍게 샐러드와 함께 뜨거운 블랙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오늘은 왠지 시험공부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잠시 잊고 싶었다.


    그녀는 폰의 전원을 끄고 잠시 그렇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서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어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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