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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 May 08. 2024

11. Flower2

인샬라 블루 목차

Prologue : Morocco

1. Real   2. Three Options  3. EMS

4. Morocco  5. Blue   6. Cold Fish

7. Burning Mountain 8. Breaks off Iceberg 9. Lily10.  Flower. 11. Flower2  

Epilogue : Inshallah Blue



    그녀가 떠나 버리는가


    두려움이 영혼을 마비시켜

    어두운 폭풍을 불러와 낙우치게 한다

    두려움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리

    -J. W. Flow-




    청년의 영혼은 차가운 메탈로 만들어진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움직이지 않는 육체를 끌어, 러닝머신을 뛰게 만들었고 맥북 앞에 앉아 디자인을 하게 했으며 자신이 만든 일과를 기계적으로 따르게 했다.


    청년은 사람을 만날 상태가 아니었으나 12시에 만나게 될 작가님과의 점심 약속에 가기 전 원고를 살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아버지 나이 되시는 작가님과 카페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표지 디자인 추가 논의, 원고, 참고도서, 주석, 책 전체 내용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였다.


    황량한 사막과 같은 영혼은 눈 앞에 앉아계신 작가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삶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부러움을 넘어 자신의 비참함에 무너져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흘릴 눈물조차 말라버린 상태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아버지 나이대의 작가님의 눈빛, 건강한 살결과 단련된 몸, 화사한 미소, 평안한 마음, 그리고 한 달간 남미를 함께 다녀온 아내, 청년처럼 불안정한 극단을 오가는 성품이 아닌 신뢰감을 지닌 비교적 안정된 타고난 성품, 작가님의 마음에 품은 것을 글로 써 나가실 수 있는 여유로운 삶, 무거운 짐을 버티고 버텨 통과해낸 후 맞이하신 새로운 삶. 그런 삶이 그에게 눈부셔 보였다.


    밖에서는 보슬비가 내렸고, 달콤한 고구마 라떼가 하얀 거품 사이로 작가님의 목줄로 뜨겁게 흘렀고, 쓰디쓴 뜨거운 검은 커피는 청년의 목줄로 흘렀다.


    그 카페 창가에는,

    푸석푸석하게 늙어버린 황량한 사막과 같은 청년과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오아시스와 같은 중년 사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일은 놀라울만큼 깔끔하게 진행되었고 보슬비가 내리는 카페 앞에서 사막과 오아시스는 헤어졌다.


    청년은 3층으로 구성된 단독주택의 3층 집으로 올라, 다시 3층 집 내부로 연결되어 있는 자신의 작업실겸 다락방으로 연결된 나무계단을 올랐다.


    보슬비 내리는 옥상에 서 있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영혼은 자신에게 허공을 응시했으나, 응시할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고있었다. 스케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 스케줄을 처리했고 그 다음 스케줄을 처리했다. 그는 원고를 읽었고 또 디자인을 했다. 일상의 순간들이었다. 그는 하면 할 수록 나아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일 처리를 마친 그는 엔진이 자꾸 꺼지는 기계처럼 멍하니 있었고 점점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기계같은 몸을 끌고가 샤워를 하기로 했다. 그는 샤워기를 틀었고 뜨거운 물 아래 한 참을 서 있었다. 멍하니 떨어지는 물을 응시했다. 육체가 뜨거워지고 피로가 풀리니 좀 나았다.


    그는 다락방으로 돌아와 로션을 얼굴에 바르고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 묶고 온 몸에 베이베 오일을 발랐다. 그는 단정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어느새 그친 밖으로 활짝 다락방의 모든 창과 옥상 문을 열었고, 방을 정리했고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 그는 다음 스케줄을 확인하고 보드라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육체 안에 담긴

    영혼을 씻는다면

    

    잠은

    차디찬 주검같은

    영혼을 부활시키리




    잠에서 깨어난 청년은 무언가의 감각이 눈 뜨고 있음을 느꼈다. 남자라는 자신의 육체, 청년이라는 나이, 한국이라는 공간, 현실의 시간, 해야하는 일, 미래, 현재, 과거, 자신이 바라던 것들이나 생각, 그녀, 그러한 현실의 것 너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이 눈 뜨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청년은 짧은 글을 써서 올렸고, 오래 지속되지 않는 그 감각의 상태로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스케줄로 잡혀있던 작가님의 전화로 깨었을 때, 청년은 평소대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이 어렵지 않았다. 갑작스레 모든 것들이 가볍고 밝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평소의 모습으로 현실에 돌아와 있었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그녀를 떠올려보았다.


    두려움과 상상이라는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던 그의 이전의 영혼이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 그녀를 떠올렸을때 느껴졌다.


    그의 영혼 속으로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 쬐이고 있었다.


    딱 여기까지만이라 해도

    지상에 태어난 그의 하나 뿐인 그녀를 만나

    짧고 행복한 추억을 가진 것에 대해

    그의 영혼은 감격했다.




    청년은 자신의 그 하루를 담은

    짧은 글을 쓰고 마치며


    한 작가님의 시집을 논의하며 알게 되었던

    이리의 이빨 모양을 닮은 꽃잎 때문에

    늑대의 송곳니로 불리는 한 꽃을 떠올렸다.


    낭아초 狼牙草

    인디고페라 틴토리아

    Indigofera pseudotinctoria Matsum



    늑대의 송곳니, 낭아초의 꽃말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꽃이었다.




    청년은 그녀에게 다정한 감사를 표했다.


    I will be your side. I cheer you with my mind. Take good care your health. Your health is most important. Thank you. Your long wait, patience, and kind words toward me. I'll be truthful. I'm happy to know you. really i am.


    그녀의 답도 다정해졌다.


    그는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다시 잠들었다.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 모든 순간들과 과정들을 감격하고 있는 영혼에는, 늑대의 송곳니들이 화사한 분홍빛으로 만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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