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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Sep 04. 2021

강하는 자란다

10대 시절을 회상하며


10대 시절의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이따금 어린 강하가 튀어나와 호통을 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도 늙었다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를 나열해 볼까. 어릴 때는 환경문제에 엄청나게 예민했다. 특히 업사이클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관련 업체들의 전시회도 많이 가고 관련 기사도 많이 읽었다. 텀블러, 에코백이 막 유행하고 환경 관련 행사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에 동참해서 빨대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했다. 또 하나는 정의감에 불탔다는 것이다. 안 좋게 말하면 맹목적이었는데, 나쁜 편, 좋은 편을 가르기를 좋아했다. 그때는 돈을 좇는 어른들이 썩었다고 생각했다.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또 다른 하나는 편견이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사업을 한다는 말 같은 것. 의기양양했고, 자신만만했고 도전적이었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표정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는 어른들처럼은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학교’ 같은 드라마를 보며 10대 주인공에게 이입했다. 어른들은 나의 괴로움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모든 게 불만이었다.      


뜨겁고 열정 넘치는 시절이었지만 다시 그때처럼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10대 때는 절대 이해 못 했던 어른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하니 무기력하게 보일 뿐이었던 거고, 여유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다. 환경, 정의 같은 가치도 에너지와 시간이 있어야 신경을 쏟을 수 있다. 어릴 때는 보호자의 집에 살면서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기에 당장 먹고 살 일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쓸 에너지가 남아있던 것이다. 지금도 집과 돈 걱정이 없다면 먹고사는 것이 아닌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수 있겠지. 결국에는 일이 모든 원인인 것 같네? 하루 8시간 노동이 인간을 망치고 있다.      


그렇다고 10대 아이들에게 쯧쯧 너희가 뭘 몰라서 그래. 라고 할 마음은 없다. 그때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커서도 조금이라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때 정의나 환경보호에 집착을 안 했다면 지금은 더 엉망일 테니까.      


최근 내가 변해간다고 느낀 순간은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였다. 내가 꿈꾸었던 집은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는데 주택은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간다고 한다. 게다가 비싸기까지. 빌라는 여기저기 잘 망가지고 관리도 안 되고 팔고 싶을 때 팔리지도 않는단다. 집 주변이 더러워지기 쉽고 좋은 동네는 그마저도 비싸고. 그러니 다들 아파트에 가는 거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결국 나의 주택 로망은 TV와 영화를 보며 키운 환상에 불과했다.     


정보가 많아지면 고려할 것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겁이 많아진다. 몇 년간 육체와 시간을 써가며 모은 돈을 날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용감했을 때는 어릴 때였다. 정보도, 가진 것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캐리어 하나만 들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던 일이나, 변호사가 되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법 공부를 했던 일이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왕좌왕했던 일이 더 많다. 자신만만해 보였지만 항상 나의 선택에 확신이 없어서 불안했다. 이 길이 맞는지, 혹시 더 좋은 선택이 있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고 자꾸만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다. 그때의 용기는 용기가 아니었다고. 진짜 용기라는 건, 가진 전부를 잃게 될 걸 알면서도 선택하는 것 아닐까. 이미 이룬 것을 다 포기하면서도 정말 이것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쥐게 되는 것. 



앞으로 평생 용기 낼 일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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