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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롭지엥 Oct 31. 2020

소금과 설탕을 사용하다

생존을 위한 요리로 한식 전도사가 되기까지

미역국을 한 술 뜨고는 딸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엄마는 요리사!!! 할머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어요."


어머나 세상에 저에게 이런 영광의 순간이 찾아오다니요!


우리 딸에게는 할머니가 해준 것= 세상 최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솜씨 좋은 할머니 손맛에 익숙한 아이는 늘, 맛있는 할머니 표 반찬을 찾았습니다.

그런 아이가 나에게 이런 칭찬을 하다니요!






달달했던 신혼 초 밥상을 차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남편에게 물어봅니다.


"자기야, 맛이 어때? 맛있지?! "


....................."어,..... 참.... 맛.... 있.....네.................."


누가 봐도 거짓말이라는 것이 다 들통날 만큼 귀는 빨개지고 말을 더듬으며 애써 맛있다고 대답하던,

달콤한 새댁의 애교를 무시하지 못했던 그때의 남편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소금과 설탕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식에 하얀 설탕과 소금을 넣는 것이 마치 하얀 독극물을 넣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소금과 설탕을 넣는다는 것은 '웰빙 열풍'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시간이 없는 워킹맘이라는 핑계를 대며, 시댁과 친정에서 공수해 온 반찬으로 주말엔 외식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요리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았고, 오직 계란 프라이밖에 할 줄 모르는 요리 젬병이었습니다.


영국에 와서 내 주방 살림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고, 살기 위해 밥을 해야 했습니다.

외식 물가가 비싸서 매일 외식을 감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생존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저의 요리는 설탕과 소금을 쓰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따뜻한 음식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먹이는 행복,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


이 행복이 나의 생애에 가능한 일 일까 했는데, 해외생활 3년 만에 장금이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내밉니다.





헤리 왕자의 결혼식에 나는 한식 전도사가 되었다



2018년 5월의 어느 날, 영국의 헤리 왕자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였고, 헤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결혼식을 보기 위해서 직접 윈저성까지 가서 새벽부터 줄을 선 시민들이 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메건과 헤리 왕자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펄럭이며, 우리 앞집 할아버지도 새벽부터 줄을 섰다고 합니다.


런던 곳곳에서는 축하 퍼레이드도 있었고, 각 동네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헤리 왕자와 마클을 축하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우리 동네에서도 마을 잔치를 열었고 저는 한식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동네 반장이 있었습니다.


옆의 옆집에 살고 있는 아나(Ana)는 영국의 명문학교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왕립 로열 발레스쿨에서 '불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영국 커플인 아나와 마이클은 막 한국에서 이사 온 우리 가족을 이웃에게 소개해주었고, 본인들의 집에 초대하고 영국 전통 식사문화와 와인 문화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늘 밝고 명랑한, 저희가 매우 좋아했던 가족이었습니다.


아나는 동네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리더' 였는데, 오늘의 행사도 아나가 기획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우리 동네 이웃들은 '동네 단체 이야기 채팅방'으로 소통을 했는데, 그 단체 톡방에 엘라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헤리 왕자의 결혼식을 축하합니다. 우리 축하 파티를 열어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나누고 싶은 음식을 가져오세요.

무엇이든지 환영입니다.
2시부터 우리의 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 봅시다.



우리가 사는 주택은 특이하게 한가운데 공용 마당공간이 있었습니다.

이 공간은 평소에는 아이들의 놀이마당으로 이용되었지만, 오늘은 동네잔치의 장소로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무슨 음식을 가지고 나갈까?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2시가 되자 돗자리를 펼치고 테이블을 펴고 술과 음료수를 얼음 트레이에 담아 파티 준비가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놀잇감을 가지고 모였습니다.


이웃들이 가져온 음식은 샐러드, 살라미, 샌드위치, 케이크, 머핀, 과일 모둠, 감자튀김, 감자칲, 소시지 모둠, 키쉬(프랑스 전통 달걀 요리), 스콘, 과일 푸딩 등 정말 다양했습니다.


각자 음료를 따라서 헤리와 메건을 축복하며 건배하고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저는 튀김만두와 한국식 간장 양념치킨을 준비했습니다.

접시는 금방 동 낫고, 그들은 내 요리가 맛있다며 한국음식에 관해 궁금해했습니다.


음식으로 시작된 대화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질문과, 이제 세계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에 대한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이웃과 친해지게 되었고, 덕분에 한국을 알리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바로 이거다!" 그날부터 저는 자칭 '민간 한식 전도사'가 되었지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아이들에게는 한국 과자를 소개해 주었고, 아이들의 놀이 겸 식사로 '셀프 김밥 싸기'를 전파했습니다.

김과, 각종 야채, 햄, 그리고 밥을 뷔페식으로 차려 놓고 각자가 좋아하는 재료를 싸서 먹는 것이었는데

영국 엄마들은 각종 채소를 알차게 먹일 수 있다며,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를 직접 싸서 먹는 재미가 있다면서 열광했습니다.


특히 한국 과자 '고래밥'은 영국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과자였고, 피자 만들기보다 셀프 김밥 싸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헤리 왕자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영국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었고,


저는 그렇게 한식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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