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존재할까?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찰떡같이 믿고 있던 그들의 나라가 북한이었다. 얼마 전 개봉한 ‘비욘드 유토피아’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야기라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 나의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보기도 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느 정도는 들은 내용이지만 생생한 장면을 보려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긴박한 장면들이 연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내와 같이 보려 했지만, 아내는 거듭 거부했다. 장모님과 같이 보라고 VOD(Video On Demand, 주문형 비디오)를 평생 소장용으로 구입하였다.
“이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한 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입니다.”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여 년 전 북한에서 탈출한 이의 증언, 북한에 남겨 두고 온 아들을 구출하려는 탈북한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어린 자매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탈북기를 생생히, 그 현장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았다. 그 힘든 여정을 돕는 김성은 목사의 목숨을 건 헌신적인 활동, 그리고 안타까움과 감동이 담겨 있어 보는 이를 더욱 뭉클하게 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다. 보는 내내 분노와 안도와 한숨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 생생한 현실을 겪은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바로 우리 집 안에서도 재생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재생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물어볼 때마다 한 장면씩 풀어줄 때가 있다. 아내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큼 나에게 알려준다. 이 영화를 보고 일주일 뒤 아내와 장모님을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이 영화를 재생시키고 멀찌감치 앉아 묵묵히 둘을 바라보았다. 영화를 보는 중간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눈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뭐야, 뭐야? 나만 빼고 둘이 뭐라는 거야?” 그렇게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지만 돌아오는 건 냉랭한 기운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둘만의 사연 그리고 둘만이 겪은 사실들을 떠올리는 듯했다. 영화가 끝나자 크게 공감하며 당신들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마치 본인들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다는 듯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장모님은 북한에서 살만한 집의 딸이었다. 그리고 군인이던 장인어른을 만나게 된다. 탱크와 기갑 장비를 유지 보수하는 부대의 총책임자였다고 한다. 한국 군대로 치면 기갑부대 정비관쯤 되겠다. 장인어른은 부대에서 인정받는, 곧은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청렴결백한 전형적인 공무원이었다. ‘고난의 행군’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아내와 딸 넷을 먹여 살리기에는 충분했다.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딸을 왜 넷이나 낳았냐고 했을 때, 이렇게 힘든 세상이 올 줄 알았겠냐며 목놓아 딸에게 했던 그 말. 딱 그 시기를 맞았다. 장인어른도 방법이 없으셨다. 그저 책대로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 정도 위치라면 소위 먹을 거라도 빼돌리거나 할 텐데 비리의 ‘비’ 자도 무색할 만큼 곧은 분이셨다. 군의 간부가 부하직원 집에 식량을 얻으러 가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 덕분에 가족들은 힘들게 살게 된다. 물론 오롯이 장인어른의 탓도 아니다. 나라 탓이지.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살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인어른은 전역하게 된다. 14년여의 군 생활을 마감하며 근처의 기술 고문의 권유도 받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북한 정부는 단호하고 잔인하다. 정부 요직에서 은퇴하거나 전역을 하면 그나마 얼마씩 받던 군의 배급을 인민 배급으로 바꾸어버린다. 한국이라면 퇴직공무원에게 연금을 주거나 그동안의 공을 치하하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어림도 없다. 용도가 없으면 폐기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일반인 신분과 같이 줄을 서며 하루하루 먹을 양의 배급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의 북한에서 절대 꿈도 못 꾸겠지만, 당연히 모아둔 재산은 없다. 가세는 기울고 곳간은 비워가고 쌀 한 톨 아니 감자, 옥수수, 강냉이마저 귀하던 시절, 배급마저 끊겨 소나무 껍질로 송기죽을 먹고 버티는 나날들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그 후 장인어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아내의 나이가 열넷이었다. 어린 딸은 엄마 손을 잡고 장마당에 나간다. 혼자서 장마당에서 집 안에 있던 물건을 팔고 먹을 것과 바꾸기도 한다. 장모님 혼자 딸 넷을 먹여 살리기에는 힘겨운 삶이다. 몇 날 며칠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건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하는 중 목숨을 건 중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중국에 가서 장사를 하고 일을 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그들에게는 절대 희망이 없었다. 탈북을 결심한 사람 모두 똑같은 심정으로 강을 넘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닌, 그저 목숨을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주인공 김성은 목사가 1,000여 명의 탈북을 돕게 된 계기가 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화였다.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 두만강을 건넌 7세 아이를 만나게 된다. 까까머리의 작고 여윈 아이가 김 목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마디 한다. “동무, 그저 같은 민족끼리 나눠 먹고삽시다.” 그 작은 꼬마가 알고 말한 것일까? 어른이 시켰을까? 그 충격으로 북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탈북을 돕는 나침반이 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목사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내부 사회의 억압과 외부 사회로부터 통제된 그들의 나라가 유토피아라고 믿고 살아온 그들에 대한 배신감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는 없는 삶이었다.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으려는 순간 찾아온 것이 유토피아였다. 그들에게 유토피아는 자유였다. 장모님과 딸들이 그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 탈북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저 자유롭게 먹고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영화 ‘아일랜드’가 생각났다. 내용의 결은 다르지만,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을 소재이자 주제로 하고 있다. 복제된 인간이 자기 스폰서 질병 치료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 수백 명의 주민들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는 유토피아에서 빈틈없는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던 주인공들을 떠올려본다.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김 부자에게 기쁨과 목숨을 바치는 지금의 북한과 너무 닮았다. 그간 감춰졌던 비밀, 엄연히 존재하는 외부의 모습을 보게 된 이들은 결국 깨닫게 되었다. 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탈북을 감행하며 자유를 얻기 위해 찾아온 이 땅, 그 들이 선택한 이 대한민국은 유토피아일까? 내 눈앞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었던 소소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나는 소중함을 잊은 채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유토피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