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 장르 중 유독 트로트를 좋아하는 아내였다. 제법 많은 곡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 나보다 곡을 많이 알고 자주 부르기에 궁금한 점이 많았다.
“여보, 한국에 와서 트로트를 알게 된 거야?”
“아니, 북한에서도 듣긴 했지만, 중국에서 많이 듣고 지냈어.” 이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간다. 아내 역시 한류 열풍의 수혜자였다. 북한보다는 중국에서 트로트 음악을 주로 들었다고 한다. 특히 가수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매일 같이 들었고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가요를 가장 많이 접했다고 했다.
북한에서 한국 노래를 듣거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며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숨어서 보거나 듣는다. 외부와의 접촉을 감시하는 북한에서 한국문화를 접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만약 발각되면 주로 단련대에 끌려가기도 하지만 본보기로 중죄를 물어 목숨을 잃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자주 접하고 있다.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2004년 아내는 중국인의 신고로 중국에서 북송되어 단련대로 끌려갔었다. 그곳에서 기막히게 형부가 될 사람을 만났다. 셋째 언니의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난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동향이었고 언니를 잘 알고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 남자는 언니의 연인이었다. 다른 식구가 모두 중국행을 결정하였을 때 언니는 홀로 고향에 남았고, 살길을 찾았다. 그리고 배우자가 될 사람까지 만나 잘 지내고 있었다. 그동안 고향 소식을 주고받았고 언니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다. 형부가 될 사람도 언니가 동생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서 서로의 근황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는 궁금해서 형부에게 물었다.
“근데 형부, 형부는 무슨 잘못을 해서 여기 들어왔어요?” 이 말에 형부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처제에게 매우 부끄러웠는지 작은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응, 그…. 그게, 한국 드라마 보다가 잡혀 왔어.” 비일비재했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재수가 없어 들키거나 잡혔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렇듯 북한 주민들은 외부 문화와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알려진 사실처럼 한국 드라마를 못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누가 더 많이 봤느냐의 차이만 있다. 하지만, 이 행동들은 분명 목숨을 건 시도였다. 지금의 북한은 예전과 달리 관대함도 없다. 친구들 앞에서, 주민들 앞에서 본보기로 처벌을 받으며 총살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목숨을 내놓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뭘까? TV 방송과 신문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현재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통제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기댈 곳은 은밀하게 들어오는 외부 문화였다. 그들은 굶주린 배를 눈과 머리로 채우고 있었다.
‘사랑’이 아닌 ‘아픔’의 미로 속에서 매일 같은 길을 맴돌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