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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Oct 14. 2024

결혼을 망설였던 것은 실패가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연휴에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내 삶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진양호 호수는 윤슬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탁 트인 전망과 시원한 호수 바람,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 여유로움은 누려본 자만이 알 것이다. 지금의 나는 무척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이다.          


결혼 전에는 배우자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내 머릿속은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는 모습들로 그려 나가는 그런 상상으로 가득 찼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누구나 머릿속에 한 번씩은 그려 봤을 결혼에 대한 상상 스케치를 나도 떠올려 본다. 생각처럼 달콤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가 넘어야 할 산…. 그 현실은 아주 달랐었다. 보통 연인이라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에 대한 확신이 들 때 결혼에 대해 조심스레 꺼내어 볼 것이다. 오래된 연인이라면 긴 연애 기간 서로를 확인하며 믿음으로 채워 나갈 수도 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에는 짧은 기간 안에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말을 이 상황에 빗대어도 좋을지는 모르지만, 결혼은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결혼을 앞두고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는가 하면, 결혼하고도 다시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의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패 없는 결혼생활을 위해 자신만의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게 된다. 선택에서 그 대상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맞선 자리에서 들은 상대방의 질문을 떠올려 본다.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꼭 한 번씩은 나올 법한 말이기에 수긍은 했었다.       


혼자 살아요?’

집은 있나요?’

그럼몇 평 정도 될까요?’

모은 돈은 얼마나 될까요?’     


차는 안 물어봐서 다행이었다. 2002년식 아반떼 중고차를 몰고 갔었는데 큰일 날 뻔했다. 질문들이 끝나자 잠깐 같이 마신 라테의 그 달콤함은 어디로 가버리고 냉랭한 분위기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처럼 느껴졌다. 마치 면접장에 면접 보러 간 사람 같았다. 다 이해가 된다. 그렇지…. 이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그렇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지 혼자 사는지도 알아야 하고, 집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하고,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직업도 탄탄해야 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격은 맞춰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가장 중요한 결혼 준비물은 바로 안정감이었다. 사회적 안정, 경제적 안정, 정서적 안정, 이 세 가지가 필요했다. 당시에 나도 이 면접자 대열에 합류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모든 조건을 갖추기에는 나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취준생처럼 결혼에 필요한 자격증을 하나씩 모으고 결혼 스펙을 쌓고 있었다.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늘 결혼 준비 중이었다.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어가고 있고,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나’라고 말할 수 없기에 결혼을 망설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고 당장은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당시에 나도 무척이나 두려웠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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