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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Oct 15. 2024

아내에게 들켜버린 연애편지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야.’ 무슨 마음이었을까? 알고 있어도 기억하고 싶진 않은 순간이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온한 어느 봄날의 오후였다. 아파트 밖 놀이터에는 동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창밖에는 벚꽃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봄날의 광경이다. 나는 거실 한편 발코니 쪽에 놓인 가죽 소파에 누워 나의 가죽과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의 두 눈은 TV 쪽으로 이미 고정된 상태이다.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잠이 오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알기에 잠든 척하려다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었다. 방에 조용히 있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와서 큰 소리로 한마디 하고 문을 ‘쿵’하고 들어가 버렸다. 바람이 닫았다고 믿기엔 문이 너무 화 나 있었다. 조용한 오후 날벼락이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숨죽이며 눈을 뜨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발밑에는 낯선 편지봉투 한 장이 있었다. 뭐지? 뭘까? 봉투를 열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내용 증명? 법원 서류?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분명 봉투 색이 달랐다. 흰 봉투가 아니었다. 연애편지인가? 저 기분이라면 이별 편지라고 해도 될 만한 상황이었다. 발가락으로 조심히 내 몸 쪽으로 당기는 순간이었다.     




“뭐가 너와 같은 마음이야?”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난 당황하며 편지봉투를 열어 보았다. 편지에는 내가 봐도 알록달록한 편지지에 빼곡히 적혀 있는 글들이 보였다. 아무리 다시 보아도 분명 여성의 글씨체다. 눈을 위아래로 황급히 움직이는 그 순간은 그 어떤 스릴러보다 무섭고 긴장된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그 편지보다 지금, 이 순간을 힘들게 했다. 텅 빈 머릿속을 아무리 굴려봐도 답이 없었다. 아내가 던져주고 간 편지는 군복무 시절 어느 이성이 보낸 편지였다. 난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난 답 없는 인간이다. 분명 나의 성격 탓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손 편지 쓰기를 좋아해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적어 보내며 좋아했었다. 답장을 받지도 못하면서 내가 주고 싶은 이에게 몰래 책상 서랍에 넣어놓고서 혼자서 행복해했었다. 그 친구가 편지를 읽는지 안 읽는지 확인하며 마음 졸이며 답장을 기다렸다. 답장은 결국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들에게 가끔 손 편지를 보내거나 엽서나 카드를 직접 적어 보내는 습관은 여전하였다. 군 복무 시절에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만 100여 통이 넘었다. 나중에 이 편지를 모으면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제대 날에는 편지 한 보따리를 안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이 보따리 안에 그 알록달록한 편지가 있었다. 아마도 20대 내 청춘의 생명수 같은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편지를 찢어 버리지 않고 간직한 것을 보면 그때는 무척 좋았나 보다. 닥쳐올 미래를 모른 채…. 



    

책상 서랍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아끼는 물건 그대로 신혼집으로 들고 온 생각 없는 나의 행동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어릴 적 추억이고 작은 실수이니 그것으로 봐주면 안 돼?’ 하며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만, 뭐라도 날아올 것 같아 싹싹 빌고 만다. 지문이 없어졌는지 확인하며 빌고 또 빌었다. 내가 아내를 화나게 한 이유는 단지 편지뿐일까? 편지 속 그 마음으로 스며들어 나에 대한 배신감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지난 일이지만 내 아내에게 혼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신혼이었기에….      




아내와 연애 시절 만나고 헤어지면 그때 기분을 글로써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 만남이 이루어지면 직접 쓴 손 편지를 건네주곤 하였다. 그 편지들은 지금은 아내의 서랍장에 고이 있을 것이다. 답장이 없는 편지지만 내 인생의 끝나지 않는 연애편지가 될 것 같다. 사랑이 그런 거지…. 상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주 확인해 주는 것.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행동으로 답 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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