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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Oct 14. 2024

혼인신고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바운더리

‘사랑의 미로’ 속에서 헤매다

부부관계를 지키는 ‘건강한 바운더리는 무엇일까?’ ‘바운더리’란 구획, 경계선을 뜻하지만, 관계에서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말하기도 한다. 바운더리는 물리적 범주(공간, 신체 접촉), 정신적 범주(생각, 의견), 정서적 범주(느낌) 등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부부 역시 각자 삶의 바운더리 속에 살다가 부부가 되었다. 오랜 연인 생활을 하고 부부가 된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석 달 만에 서로 경계를 허물며 부부가 되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각자의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으니 당연히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하였으나 혼인신고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혼인신고를 바로 하지 않는 걸까?’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살면서 더 지켜보겠다는 생각일까?’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면서 아내의 눈치를 보는 날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연애하고 결혼식장에도 다정하게 손잡고 들어갔었다. 떠밀려 식장에 들어간 건 아니었기에, 솔직히 난 졸보가 된 것처럼 살짝 겁이 났었다. 혼인신고까지 하면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부. 즉, 내가 생각한 완전한 부부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혹여나 동거인으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혼자 걱정하곤 했었다. 

“여보, 혼인신고 언제 하러 갈까?”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 다음에 하면 되지!” 하고 넘겨버렸다. 내가 만약 아내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마음속에 있는 말을 사실대로 내뱉을 수 있었을까? 

“여보, 난 아직 당신을 잘 모르겠어. 우리 너무 결혼을 너무 서둘렀던 것 같아서 조금 더 조심스러울 뿐이야.”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을까? 입장 바꿔 아내가 되어 보기도 한다. 상대방이 듣기에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아내는 말을 아꼈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여느 때처럼 평온한 아침이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난 모닝커피 한 잔을 먹고 있었다. 원두였으면 더 분위기 냈을 수도 있었는데 아쉬운 대로 커피믹스로 분위기를 잡고 있다. 아내는 아침 일찍 화장하고 뭔가 급하게 준비한다. 그리고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한마디 건넨다.

“뭐 해? 출근 준비 안 하고?”

“커피 한잔 먹고 바로 나갈 거야”

“그럼, 같이 나가자…. 오늘 회사에 조금 늦는다고 말해.”

“왜?”

“왜긴? 혼인신고 하러 주민센터 가야지.”

“어…. 바로 준비할게. 이제 진짜 부부가 되는 거네?”

“언젠 부부가 아니었나?”

아내의 말이 맞다. 그래 사실혼도 부부지. 긴말 필요 없이 아내의 말에 순응하며 황급히 채비하고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굳이 팔짱을 끼면서까지 티를 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함께 길을 걸어갔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는 나의 것,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된다.”

“정말 완전한 하나일까?” 이런 감정보다 이제는 완성된 둘이 된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혼인신고를 해야만 완전한 부부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묶어 주는 것인데 왜 가족관계 증명서 속에 나란하게 우리 둘의 이름들을 묶어 주는 것만 고집했을까? 아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 속에서 자아를 버리지 않고 자존감을 지켜 주는 것이 중요한데 법적인 문서로 나의 아내가 내 삶의 방식 속에 들어왔다는 오만과 착각은 이기적인 심보였다. 혼인신고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인정이었다. 완전한 부부란 혼인신고가 아니라 완성된 둘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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