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더욱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오며 사회적인 성취를 이루었다면 아내와 함께 더욱 행복한 삶의 여행길을 떠나고 있었겠지. 가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물론 그 옆자리는 누구일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험난한 여정을 함께 시작해 준 지금의 아내가 무척이나 고맙다.
가진 것은 없고 결혼은 하고 싶었다! 내 나이 마흔 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쯤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이 하나둘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곤 했다. 이미 학부모 소리를 듣는 친구들도 있어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조급한 마음도 생겼던 것 같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지만 제일 신경 쓰이던 것은 부모님이었다. 혼자 외롭게 지내는 자식을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만혼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예전에는 결혼 적령기를 넘기면 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민감하게 여겨졌었다. 나이의 앞자리 ‘3’이라는 숫자에 얽매이며 살아오다가 앞자리에 ‘4’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숫자 앞에 조금씩 작아지기도 하고, 반면 살포시 내려놓는 감정도 느낀 적이 많았다. 친구들이 나를 박물관에 가서 구경하게 되는 건 아닌지 아찔한 기분도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몇 마디씩 건넸던 친구도 있어 떠올려 본다. 물론 예전의 사회통념과 결혼풍속에 따라 그 기준이 자리 잡았을 뿐이지 사실 지금은 절대적인 만혼의 기준은 없다. 결혼보다는 치열하게 살아가며 사회적인 성취를 더 중요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의 시기는 숫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과 삶의 질의 만족도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계획되지 않은 채 갑자기 툭 인연이 찾아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급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든지, 사고에 대한 수습으로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계획적인 출발을 원하기 때문이다. 결혼 정보회사에서 정한 만혼의 기준도 차츰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고 결혼을 서두르는 미혼자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비혼주의자도 늘어나고 있는 세상인데 전혀 대수롭지 않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말하듯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 같다.
20대에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30대에는 결혼 전선에 뛰어든 셈이다. “결혼도 경쟁이지.” 결혼 시장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구직자 이력서 같은 구혼자에게도 스펙이 요구되는 세상이 되었다. 구직이든 구혼이든 나만의 경쟁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에게 결혼이란 단어는 멀게만 느껴졌었다. 직장에서 안정권으로 자리를 잡아야 했고 결혼 준비를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결혼 단어를 떠올려 보면 직장의 안정감, 결혼 후 보금자리, 경제적 뒷받침 순으로,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항상 새기고 있었다. 결혼은 시작보다 그 끝이 중요하지 않을까? 늦은 나이에 결혼한 아쉬움으로, 서로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성숙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자녀 출산? 평균수명이 늘어난 세상에 나이 든 아빠면 어때? 늦어도 저출산 해소에 기여하면 좋겠지만 만약 아이가 없어도 둘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지 않을까? 이제 인연을 만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내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기다리던 인연을 만났다. 아니 인연을 만들었다. 내 나이 마흔을 앞둔 해, 지금의 아내가 나에게 빛처럼 다가와 주었다. 그렇게 아내와의 삶의 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