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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May 31. 2024

결혼이 외로움의 열쇠는 아니다

아내가 나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나를 선택하기 이전에 결혼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였다. 아내는 결혼할 생각 없이 잘 살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꿈이 있었고 아직 못 이룬 일들이 많아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제빵일을 하며 빵을 굽기도 바리스타 자격증으로 커피를 내리기도 하며 꿈을 키우고 있었다. 먼 훗날 소소한 카페를 운영하며 나만의 공간을 만들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삶 속에 여러 차례의 인연이 다가왔지만, 그때는 아직은 시기가 아니었다고 거절하곤 했었다.     




멀리 있는 어머니도 모셔서 와야 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려면 열심히 돈벌이해야 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었다.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 밤낮없이 달려온 그녀의 달력 속의 숫자엔 동그라미와 X 표시가 채워져 가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 그녀의 일상은 일이 전부였다. 물론 나를 만나게 되어 결혼을 결심한 것은 아님을 안다. 적절한 타이밍에 그녀의 눈앞에서 내가 많이 거슬렀을 뿐이었다. 물론 집요하게 달라붙어 귀찮게 하는 구석도 있었다. 

“당신은 언제 결혼해야겠다는 결심하게 되었어?”

어느 날 아내와 대화 속에 분위기를 틈타 짧게 물어보았다. 나의 예상대로 바로 대답해 줄 리는 없다. 며칠 뒤 아내가 잘생기지도 않은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내게 말을 건넨다.

“언제 결혼 결심하게 되었다고 물었었지?” 아내가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외로움 찾아올 때가 많았어. 혼자 사는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 의사 선생님이 수술해야 한다며 가족 동의서가 필요하다는 거야. 친구가 달려와 서명했지만, 그때는 가족이 너무 그립고 외롭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빨리 결혼하고 싶었어.”

순간 대답을 듣고 나는 멍하게 아내의 눈을 바라보았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 같기도 했지만, 코끝이 찡해지고 내 눈가가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단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생활하며 기대고 싶었어, 그게 다야. 가슴 깊숙이 저며 드는 외로움이랄까.” 

그 외로움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외로움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배우자로 항상 곁에 있으면 되겠거니 하였지만, 옆이 외로운 게 아니라 마음이 외로운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외로워서 기대고 싶은 사람을 찾게 되고 옆구리가 시려서 온기를 찾는 그런 외로움의 탈출구는 아니었다.     




아내는 결혼해도 외롭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왜? 왜냐고?”

“내가 옆에 있잖아. 그런데도 외로워? 이제 혼자가 아닌데도?”

그때마다 나는 내가 옆에 있는데 뭐가 또 외롭다는 걸까? 하며 지나쳤던 적이 많았다.

“결혼한다고 모두 남편이 되는 것은 아니야!”

“당신은 남의 편 같아!”

“나 당신한테 잘하고 있잖아? 아니야?”

당당하게 방어적인 말대꾸를 하면서도 나는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만다.

“댔다. 그만.”

“잘 자라. 이 사랑스러운 남편 놈아.”

대화가 안 되는지 아내는 살가운 한마디를 던지며 이내 자리를 피해 버렸다. 오늘도 현명한 그녀는 전장의 기운이 맴돌기 전에 잘 끊어 준 것이다. 나에게 숙제를 준 것 같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았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로 결혼하면 옆에 있어 주고 챙겨주는 것만이 전부임을 알고 나는 남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늘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었다.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텐데 아내는 나를 맞추려 나에게 끌려다니며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었다.     




내 삶을 영위하며 결혼 전 내 삶의 패턴을 유지하면서 사회생활을 나 혼자 즐기고 있었다. 결혼 후 찾아온 외로움은 무엇일까? 외롭지 않기 위해 결혼했지만 결혼 후 더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인간이란 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외로움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본질이듯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부둥켜안는다고 그 외로움은 가시지 않는다. 아내가 말하는 외로움은 그녀가 잃어버린 자존감 때문은 아닐까? 아내가 잃어버린 자존감을 챙길 수 없었던 이유는 결국 나에게 있었다. 나는 아내를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 철없이 코 골며 자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이불속에서 흐느낀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최소한 남의 편은 되지 말자고 새겨본다. 그녀의 마음 열쇠를 찾아 외로움의 자물쇠를 풀고 싶은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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